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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ul 12. 2021

나를 위로하는 법을 찾았나요?

어떤 상황이 정말 힘들거나 인생에 답이 없다고 생각될 때, 실은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나 친구들의 토닥임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이 나름의 위안이 되겠지만, 본질적인 답답함이 해소되기는 어렵다. 누구도 지금의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그 안에 포함되는 어려운 문제나 곤란한 상황들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거나 고스란히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진짜 힘든 순간에 뒤통수를 훅- 내려치는 고통과 함께 생생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만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정말 힘든 상황이 닥쳤을 , 아무리 거나 허물이 없는 사이임에도 내면의 고민을 100%  그러니까 모조리 털어놓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더라. 어느 선까진  쏟아내고 뱉어내다가 가장 중요한 팩트를 끄집어내야  , 본능적으로 멈추고 만다.  그럴까? 타인이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없다는 자각, 아님 남들에게 나를 완전하게 까발렸을  오게  두려움 때문일까? 어쨌든 뭔가를  들춰내지 못하고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짊어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더없이 쓸쓸해지고 외로워지고 만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외로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수많은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나마 가장 큰 위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내야만 하고, 용기를 내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만약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든다면 그것들은 조만간 더 큰 화살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 어떤 것이든 그것들을 바로 봐야 할 시간은 기어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필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 간에, 이 세상에서 자멸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냥 울어도 된다. 우는 행위는 지금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다독이는 가장 최소한의 행위가 아닐까.(그래서 나도 자주 운다.) 아니면 우는 얼굴을 보일 수 있는 사람 앞에 가서 울어도 괜찮을 것 같다.


혹은 잠시 시간을 갖고 그 문제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도 좋겠다. 내 안에 문제를 바로 볼 용기가 조금 생길 때까지 말이다.


나는 그럴 때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선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공원이나 길거리에 놓인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단, 내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멍하니 풍경이나 타인에게 시선을 주며 잠시 나를 망각한다.


사안이 심각할 땐 이런 것도 해 볼 마음조차 생기지 않지만, 억지로 나를 챙기는 시간들은 다만, 얼마간이라도 스스로를 숨 쉬게 하고, 숨을 고뤄 1mm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어찌하든, 시간은 흘러가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난다. 지금 이 순간도 다 지나간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미 경험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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