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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Dec 04. 2022

상실, 견뎌냄의 시간

상실만 남은 한 시절을 지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10년 넘게 우리 가족과 함께한 반려견 토미를 준비도 없이 상실하고야 만 것이다. 이별이 너무 잦고 갑작스러워서 상실감은 더없이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긴 한숨이 지나지 않는 시간처럼 낮게 토해졌다.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들은 어떻게 견뎌낼까. 인생에서 이런 상실을 아예 겪지 않고 지나는 운 좋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오직, 견디고 견뎌내는 일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상실은, 상실 이전의 시간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나는 다시는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좋았던 한 시절, 어떤 순간의, 그때의 나로.


나를 한 없이 웃게 만들었던 순간들은 아직 그대로, 내 어딘가에 남아있지만, 상실된 채 뻥 뚫린 가슴엔 공허함만이 자리했다.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흩어졌다. 


어떤 상실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더 크게 성장하고 성숙해진다고들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지금 당장의 상실은 내면의 성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끝나지 않는 긴 시간일 뿐이었다. 그것은 잔인하게 낮은 자세로, 도망갈 수도 없게 내 주변을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견뎌내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내게 고마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이 상실의 아픔을 그냥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또 온몸으로.


진심으로 '온몸으로'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듯싶다.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
비스킷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 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음, 하나의 인생철학이군."
"하지만 그건 정말이라고. 난 경험으로 그걸 배웠거든”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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