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믿기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단 한 글자의 글도 읽고 쓸 수가 없었는데, 몇 달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글을 다시 써보라고 했다.
하지만.... 되질 않았다.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때의 생각은 온통 고통과 슬픔. 애통한 것들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부터 신기하게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서 여전히 엉성하고 서툰 글이지만,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래, 언제나 글은 내게 치유의 도구였지. 다시 글을 쓸 수 있음에 신께 감사했다. (다시 쓰게 될 줄 몰랐으므로)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런 의욕도,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마음껏 울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른이라면 눈물 조금쯤은 삼킬 수도 있어야 하고,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 또한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 배웠으므로.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자꾸 삼켰다. 그러지 말고 '울자' 하는데도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목구멍이 뜨겁다는 말이 이런 거였나. 눈물을 삼켜도 삼켜도 자꾸만 뜨겁게 무언가가 차올랐다. 삼켜지지도 않는 덩어리가.
울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돌았다. 한 시간쯤 돌다가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놀이터를 보고 울었다. 그러고 나면 한결 나아져서 집으로 돌아갔고, 저녁엔 다시 예쁜 저녁노을을 보며 걷고 걷다가 또 울었다. 그러면 또다시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슬픈 사람에겐, 힘든 사람에겐, 괴로운 사람에겐,,, 그냥 울어야 할 시간이 필요한 거다. 스스로를 위해 안간힘을 내어 한걸음 걸을 만큼, 용기를 내어 울어야 한다.
그런 이들에겐 울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힘든 일을 막 겪은 사람들에겐,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주는 것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그저 스스로 울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게 그렇지만, 마음에게도 복잡한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러니, 그것들에 잠시 울어야 할 시간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