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숨의시간 02화

예외 없는 불행이 내게 닥쳤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

by 잔별

지구 밖으로 떨어진 걸까?


분명 같은 공간인데, 어제와 다른 세상이다. 왜 숨쉬기가 어려울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하는 일인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죽음의 그림자는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정상적인 숨쉬기가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어느 날,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살기 위해’ 정신의학과를 제 발로 찾아갔다. 자동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나...’ 조금 서성이다 중앙 사이드 쪽, 통유리 창 앞에 놓인 바(Bar)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창 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건물들로 둘러싸인 거리는 깨끗했고, 어쩐지 평화로워 보였다. 지나는 사람들도 분주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흐릿한 의식, 초점 잃은 멍한 두 눈, 어리바리한 표정.


나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처음 가본 그곳은 참 산뜻했다. 하얀 공간에 고루 퍼져있는 감미로운 꽃향기. 단정하게 정돈된 탁자와 의자들, 대형 스피커에선 맑고 고운 피아노 연주가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간호사들은 친절했다. 창밖의 풍경과 병원 안 모습을 번갈아 살피며 순서를 기다렸다.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허공을 쳐다봤다. 몇 번인가 ‘후-후’ 심호흡을 했다. 자연적인 숨쉬기가 버거워 자꾸 다른 곳으로 향하는 의식을 다시 당겨오고 싶다는 듯, 허공에서 발끝으로 시선을 내리고 또 내렸다.


2년 전 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이별을 했다.

가장 사랑하는 나의 그 사람, 남편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게 된 것이다.


그날과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아직도 아주 많이 힘들고 어렵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자각하기 힘든 그 시각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아주 낮고, 천천히, 이 끔찍한 경험들을 낱낱이, 피부까지 다 느끼게 해 주겠다는 듯. 무서울 정도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어떤 평범한 날,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TV 속 뉴스에서 듣던 일, 거짓말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 거다. 믿기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일. 가능하다면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지?’ 신이 있다면,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질 리 없다. 원망스러웠다. 이런 불행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만 들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온몸이 그대로 굳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듯, 정신이 아득했다. 그저 멍하기만 했다. ‘이건 거짓말이야. 이런 일이 나한테 있을 리 없어.’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게 벌어진 것이 맞았다. 나는 다시는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큰일은, 이런 나쁜 일은, 이런 불행은,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고 40여 년을 살아왔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 드라마 속 이야기일지라도 생각만으로 아주 많이 가슴 아픈 일.


행복의 절정으로 향해가는 클라이맥스.

인생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뒤통수를 크게 몽둥이로 내리쳤다.

이대로 네 인생이 순탄하게 흐르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듯.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또 하나 알게 됐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그게 무슨 일이라 할지라도, 가령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에게도 전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생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불행에도 예외는 없었다.

나는 그 냉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뒤에, 살기 위해, 숨쉬기 위해, 정신의학과를 스스로 찾아갔다. 그렇게 내 인생은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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