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숨의시간 03화

슬픔은 치유되는 게 아니다

by 잔별

때때로 나는 아주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터널의 끝은 너무나 멀고 희미해서 출입구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처럼 무섭고 길었다.


아주 먼 길을 가는 여정의 이정표를 찾긴 했지만, 잘 찾아온 출입구인지는 모른다.


그저, 어떤 것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만 겨우 할 뿐이다.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다가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너무 달라서 재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예전보다 많은 것을 경험한 내가 읽는 책의 깊이가 과거의 내가 읽은 것과 같을 리 없다. 하지만, 너무 간극이 깊어 아예 새 책을 읽는 기분이었달까.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오로지 홀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하루 그것만 붙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하루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며,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대목에서 정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이렇게 통찰 깊은, 범접불가의 사유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슬픔에서 배우는 인생이 꼭 슬픔만은 아니고, 강인함이나 성실함일 수도 있고, 깊이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치유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있다. 치유에도 성실한 자기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슬픔에서도, 기쁨에서도, 우연하게 찾아오는 인생의 순간마다 그저 자신이 채우고 있는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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