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평생 친구가 되자!
우리는 연상연하 국제커플이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콧바람이 잔뜩 들어갔다가 이제 정말 정착해보려고 하는 토종 한국 여자이다. 그리고 남편은 2012년 한국에 처음 입성하여 아직까지 이 땅을 떠나지 않은 한국문화 99.9% 패치를 완료한 미국인이다.
우리는 2017년 말에 만나 2019년 5월 25일에 결혼하게 되었다. 만날 때와 다르게 우린 이제 둘 다 30대가 되었다. 프러포즈는 누나인 내가 먼저 연애초부터 했었다. 결혼에 대한 마음이 급해서가 아니라 한날이라도 보는 걸 거르고 싶지 않아서, 내 평생 친구가 될 좋은 사람이라서,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벌써 결혼 6개월을 넘기고 있고 많이 서로에게 적응했다. 난 사실 우리 남편이랑 사는 게 30년 넘게 다른 환경과 문화 아래서 자라왔다는 것과 3살의 나이차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 잊어버릴 정도로 편하다. 그 이유는 천천히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앱으로 만났다.
다들 앱으로 만났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경로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에게 맞는 좋은 인연을 만나면 그것으로 족한 것 같다. 우리는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미프'라는 언어교환(데이트) 앱을 통해서 며칠간 연락을 주고받았고, 나는 만나자는 제안에 겁 없이 Okay 했다. 남편은 세상 착한 사람 좋은 인상의 소유자이고 위험한 남자의 향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2017년 12월 7일 잠실 새내 출구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아직도 까까머리로 바짝 깎은 머리와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 사진보다도 더 사람 좋고 순박한 이미지의 그를 기억할 수 있다. 약간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 바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둘 눈에서는 스파크가 튀었다. 우리는 한방에 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인 토요일에 다시 만나자고 그에게 애프터 신청을 받았다.
근데 여자의 촉은 엄청나다. 금요일에 연락을 주고받을 때 난 토요일에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났다. 그날에 그는 연락도 안되고 내 메시지를 읽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연애의 감도 잃어버렸다 생각하며 낙담했고 감기로 온종일 누워있는 신세로 하루를 보냈다.
그날 저녁 즈음엔 카톡도 차단했는데,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그에게 연락이 절대 안 올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남겨놓지 않기 위해 카톡 친구 차단을 풀고 친구 목록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그날 늦은 오후까지 침대 신세였던 나에게 장문의 카톡이 그로부터 날아왔다. 대략적인 내용 이러했다.
내가 한 일이 정말 너한테 못할 짓인 걸 알지만 너를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용기를 냈어. 사실 너 말고 다른 여자들과도 채팅을 했었어. 그렇지만, 너를 실제로 만나고 나니 네가 너무 진실한 사람이라 죄책감이 들어서 너와의 연락을 차단했어.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 네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이렇게 다시 연락했어. 많이 화가 났겠지만 혹시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순 없겠니? 정말 미안해.
나는 실없는 사람처럼 그에게 문자를 받은 몇십 분 만에 연락했다. 문자를 보고 짓는 나의 미소가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이틀간의 시간이 이미 상당 부분 치유되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문어발식으로 많은 남자들과 채팅했었지만 그와 만났을 때 함구했었기에 일방적으로 연락을 단절한 건 나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말고도 다른 여자와 동시에 채팅했다는 이유로 내게 죄책감이 들고 본인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 포인트에서 나는 '어쩌면 이 남자는 파트너에게 도덕적 도리를 다하는(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고 엄청 좋게 해석을 했다. 이것이 바로 콩깍지의 힘.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고 만난 지 535일 만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만약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카톡에 친구 차단을 하루라도 늦게 풀었다면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었을까?
한 사람과 결혼 3번 한 기분
법적으로 한 번
우선 혼인신고부터 했다. 신고 1개월 전 이미 집을 합쳐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우리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해서 서둘러했다. 미국인이라 대사관 스케줄도 잡고 하니 준비하는데 1달이 걸렸다. 혼인신고는 종로구청에서 했는데 구청 단독 이벤트로 국적 상관없이 전통한복을 무료로 대여하고 사진 촬영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폐백을 안 해도 될 만큼 나쁘지 않은 사진이었다.
종교적으로 두 번
내가 엄청 독실한 편은 아니지만 가톨릭 신자이다. 근데, 우연히도 성당에 나가진 않지만 남편도 어릴 적 세례와 첫 영성체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이다. 그래서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더 단단한 가정을 이루고자 영적인 결혼식인 '혼인성사'도 하기로 했다. 이 역시 절차도 많고 국적이 달라서 난항을 겪었지만 확실히 일반 결혼식과 다른 큰 의미가 있는 결혼이었다. 큰 거부감 없이 내 뜻을 따라준 남편이 고맙다.
사회적으로 세 번
세 번째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결혼식을 했다. 나는 또 운이 좋아서 일을 하면서 플래너 없이 우리에게 꼭 맞는 맞춤형 결혼식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스몰 커스텀 웨딩을 했는데 정말 이런 게 국제커플의 장점인 것 같다. 양가 팽팽한 기싸움이나 조율 없이 척척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케바케지만)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미국에서 14명의 대가족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날아왔다. 이 날 우리 포함 총 20명의 대가족이 탄생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신나게 우리 스타일대로 즐겼고 생에 최고의 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완벽했던 날이다.
3번 결혼한 기분이라 준비해서 잘 치러내는데 체력소모가 상당했던 것 같다. 모든 파티가 끝난 후 여기저기 아프고 골골거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놀라운 건 리마인드 결혼식을 또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날만큼은 가장 축복을 많이 받는 주인공이 되는 날이니까.
국제커플 혼인신고서 후기 블로그
국제커플 혼인성사 후기 블로그
결혼식 사진과 영상이 담긴 블로그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우리
우리는 정서적으로 맞는다. 신기하게도 국제커플들이 공통적으로 겪을만한 각자의 문화의 좋은 점은 간직하고 단점이 될만한 부분은 둘 다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우리 커플이 조절할 수 없는 가족관계, 특히 우리나라 정서의 시월드나 어느 곳에 나 있을 부모님의 반대, 인종차별 같은 장애물들은 정말 운이 좋게도 하나도 없었다.
먹는 것
남편은 극혐 하는 순대, 보쌈, 닭발, 황탯국, 미역국 또는 밍밍한 죽요리 이런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하드코어 음식도 주저 없이 시도하고 좋아한다. 특히 강한 향과 맛을 좋아한다. 어딜 가도 살기 좋은 타입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정크푸드 같은 느낌만 안 들면 종류 안 가리고 다 먹을 수 있다. 다만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김치도 매일은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
함께 뼈해장국을 즐길 수 있는 것, 나도 몰랐던 미나리 삼겹살이나 먹태를 소개해주고, 나보다 남편이 더 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는 건 내 복이 아닐까 싶다. 이쯤 되니 남편의 입맛은 외국에서 살다온 한국인 같다. 그래서 곁들일 반찬이나 소스는 종종 각자 준비해도 밥상을 따로 차리는 일은 거의 없다.
가사분담
남편도 자취를 오래 한 편이라 가사노동에 익숙한 편이지만 다만 화장실 청소만은 하기 싫어했다. 남편이 올해 초부터 미국의 사이버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어서 가사노동에 소홀해졌고 나는 집이 작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늘 하던걸 봐와서 그런지 내가 더 많이 일하는 것에 불만 없이 꿋꿋이 반년을 넘게 가사노동을 거의 전담했다.
그러나 몇 달 전 농담을 하다가 가사분담에 대한 생각 차이와 진심이 터져 나와 다투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남편은 본인이 수요일에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내가 대부분 요리를 하고 남편은 보조하는 편이라 이제 설거지는 남편이 주로 하고 있다.(주방 닦고 정리하는 뒷정리는 내 몫 내가 하고 싶으니까) 늘 그랬듯이 빨래도 함께 널고 갠다. 그래서 이제 '난 가사분담의 주'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싸움
누가 싸우고 싶겠냐마는 혼자서도 속에서 여러 감정들과 싸우는 판에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살기에 싸움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다툴 때 영어로 말하는데 당연히 모국어가 아니니 내 의견이나 감정을 충분이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게 불편할 때도 있지만 생각을 여과해서 내보낼 수 있으니 다행일 때도 있다. 그나저나 싸우면서 틀린 문법 정정하는 나를 보면 남편이 심각하다가도 속으로는 웃기기도 할 것 같다.
이제껏 지내오면서 감정의 골이 없는 것 보면(남편도 그러길 바란다) 둘 다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은 빨리 잊어버리려는 성격도 비슷해서 다행히다. 만약 한 명이 갈등의 상황에 닥치면 동굴로 들어가는 성격이었다면? 서운함이 며칠을 가는 성격이라면? 결혼생활이 수월치 않았을 것 같다.
정치적 관심
나는 진짜 정치적 관심은 없는 편인데 외교적 정치문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컨대, 다행히도 남편은 나의 보이콧을 지지해주고 함께하는 편이다. 어느 날은 남편 한데 "네가 보기에 나 국가주의자 같이 보여?"라는 질문에 "아니, 근데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거 같긴 해"라고 답했다. (근데 난 둘 다 아니다.)
트럼프에 관해서는 의견이 같다. 그가 자국의 이익과 지지층들의 공감을 사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인 건 알지만 우리나라한테 하는 걸 보면 참 밉다. 근데 내 남편은 그를 더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거나 집착하지 않아 이 또한 참 다행이다.
다른 얘기지만 우리 남편이 외국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반면 나의 제부가 들어야 하는 우리 아빠의 정치 얘기를 홀로 경청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쓰럽고 잘해주어서 고맙다.
이민
이민에 대해서도 다른 커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다른 나라는 가기 어려우니 상황이 뒷받침이 되면 비교적 수월한 미국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나는 둘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국도 미국도 최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는 미국에서 키우는 게 낫지 않아?", 우리 부모님 마저도 "여러모로 한국은 살기 글렀다. 미국가서 살아."라고 하니 나도 좀 더 심층적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틈틈이 웹서핑을 해보니, 미국이 교육이나 의료 시스템 등 생활하기에 아주 탁월하게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말하니, 예전부터 그랬듯 "네가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할 곳이면 계속 한국에 있어도 좋다."라고 대답했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난 애만을 위해서 이민을 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민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서이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 일하게 되는 기회나 상황이 여의치 않고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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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우리
같이 술 한잔 기울이고 넷플릭스를 끼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배우는 진보적인 하루를 살아하는 것도 매우 뿌듯하다. 그래서 나는 원래 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남편은 직업을 바꾸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뭐 대단히 성과를 내는 건 아직이지만 이런 점이 닮았기에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잘 지내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무사히 무탈히 절친, 베프로 곁에 있어주기를 기도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