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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중독자 Feb 04. 2024

함께 시계를 좋아하는 일

내가 직접 찍은 그루포감마


함께 시계를 좋아하는 일




나는 이렇다 할 커뮤니티에서 활동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떤 SNS를 하건 자신의 글을 올리기보다는 남의 게시물을 염탐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그런 내가 최근 시계 커뮤니티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커뮤니티가 아니라 총 가입 회원이 10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커뮤니티였다. 방문을 하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한정적인 커뮤니티여서 그런지, 내가 작성한 글에 댓글을 달아준 사람의 글에, 다시 내가 댓글을 달곤 했다.


내가 직접 찍은 세이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익숙하다 보니, 서로가 무슨 시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게 되곤 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스트랩을 맞춘 파네라이(Panerai) 사진을 자주 올리시는 분이 계셨고,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마이크로브랜드의 시계를 올리시는 분이 계셨다. 시계 사진을 보정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분은 음영의 대비가 명확한 사진을 주로 올리시는 반면, 다른 분은 보정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도 계셨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시계 알을 무조건 크게 찍어서 올리는 편이다.


시계의 뒤에 찍힌 배경을 자주 보다 보니 어느덧 서로의 직업까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사진을 올릴 때마다 곧잘 항공기 계기판이 찍혀있는 것을 보면서 작성자가 실제로 파일럿으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항상 똑같은 책상을 배경으로 찍힌 시계 사진을 보면서 작성자가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시계 사진과 함께 올라오는 가족들의 사진이나 지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누구이고 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셨구나. 친구와 함께 술을 드시고 계시는구나. 오늘 힘든 일이 있으셨구나.


내가 직접 찍은 보스톡


서로의 관심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계를 좋아하더라도 회원들 간에 좋아하는 시계의 영역이 다양했다. 남들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인지도 높은 시계를 좋아하는 회원이 있었고, 집이 아니라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빈티지 시계를 좋아하는 회원이 있었다. 어느 분은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의 시계를 좋아하셨고, 다른 분은 킥스타터(Kickstarter)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마이크로브랜드의 시계를 좋아하셨다. 시계 사진을 올릴 때마다 해당 시계의 브랜드와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적어주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나처럼 시계 사진 하나에 덕담 한 줄만 달랑 적어 놓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요즘 나는 커뮤니티에 올릴 시계 사진을 2~3일에 한 개씩 찍곤 한다. 어떤 배경에서 어떤 각도로 찍어야 내 시계가 예쁠지를 고민하고, 찍은 사진을 갖고는 기본 편집프로그램을 사용해 이렇게 저렇게 보정도 해본다. 그러곤 커뮤니티를 확인하며 내 게시글에 달린 댓글에 일일이 답변도 해본다. 소중한 관심 감사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내가 직접 찍은 글라이신




남들은 누가 무얼 차든 전혀 신경 안 쓴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걸 그 무엇보다 신경 쓴다. 상대방의 손목 위에 올라간 시계를 알아채고 감탄하고, 누군가 새로 산 시계가 어떤 것인지 칭찬하고, 이번에 새로 나온 시계가 무엇이고 어떤지 서로 얘기를 나눈다. 시계라는 물건이 우리에게 이토록 가슴 뛰는 일이라는 걸 서로 알아주고 또 알아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계 사진을 찍고, 커뮤니티를 들락거린다, 하루빨리 성실회원으로 등업해서 더 열심히 활동해야지 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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