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늘 가보고 싶은 식당이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제육볶음이 특히 맛있다는 그 식당은 여름에는 물회 냉면을 판다. 그 맛이 또 일품이라는 게 동네 이웃들의 평. 지나갈 때마다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휴무일이라서, 사람이 많아서, 오늘은 그 메뉴가 당기지 않아서 등등 각가지 이유로 숱한 기회들이 지나갔다. 오늘 그 가게 앞을 지나는데 휴무 안내문이 보였다. 개인 사정으로 무기한 휴업이라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이 집 물회 냉면을 먹어볼 수 있을까? 당분간, 아주 오랫동안, 아니면 영영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그 집의 시원한 물회 냉면 맛을 상상하며 식당 주인 부부의 건강과 평안을 바라본다.
어디 인생에 아쉬운 게 물회 냉면뿐이겠는가. 지난 소개팅남부터 고민하다 품절되어 버린 스웨터까지 타이밍을 놓쳐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들이 속속들이 떠오른다. 취업 후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몇 달의 공백기가 생겼다. 늘 꿈꾸던 장기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유럽도 가고 싶었고 치앙마이에서 여유롭게 한달살이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 자금이 부족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는 게을렀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렇게 망설임과 게으름의 승리로 유야무야 시간은 흘렀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그 자유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몇 달 동안 여행을 가는 건 곧 퇴사를 의미한다. 그때 못 갔던 장기 여행은 아마도 30년 후쯤이나 가능할 것 같다. 한번 놓쳐버린 일은 다시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올해 여름에는 비가 참 많이 왔다. 많이 왔다는 표현보다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게다가 무척이나 더웠다. 몇십 년 만의 폭염이라는 뉴스가 연일 들려왔다. 뜨겁게 달궈진 지구가 언젠가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말로만 듣던 기후 변화를 직접 체험하니 지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헛으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더 이상 재고 따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 당장이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할 텐데.
지나버린 시간의 아쉬움과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더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볍게 해 보자. 우주를 정복하는 일도, 세계 일류가 되는 것도 아니니 그저 아쉽지 않게 여기저기 기웃대며 세상 구경이나 실컷 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그 어떤 실패도 후회보다는 나으니까.
자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엔 다이어트로 미뤄두었던 골뱅이 무침을 먹어야겠다. 소면 잔뜩 비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