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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Sep 14. 2022

환상 속의 그대


일이 나의 타이틀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자아실현? 사회에 이바지? 아니다.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지구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생명을 구하는 일도 아니다. 대단한 사명감도 없다. 그저 내 힘으로 나 하나를 책임지기 위한, 생계를 위한 일.
- 김경희 <비낭만적 밥벌이> 중에서 -


요즘 나에게 딱 필요했던 말이다. 밑줄 쫙쫙, 별표 땡땡.


직장인이 되면서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이다. 그만큼 현재 직업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보람도 얻고 싶고, 돈도 많이 버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 이게 무슨 뒷동산에 유니콘 목장 같은 소리인가.


인생에 대한 콩깍지는 벗겨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직업에 대한 콩깍지는 벗지 못했다. 완벽한 직업에 대한 숭상은 현재 직업에 대한 100퍼센트 불만족을 불러일으킨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업이 못마땅하니 삶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진다.


꿈을 좇아라! 도전하라!  이상적인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쫓냐고요. 훌륭한 조언이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우리는 전투력을 잃는다. 내가 꿈꾸는 완벽한 직업을 찾아 10년째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 결과 과감히 그런 직업은 없다고 단정 짓겠다.


좋아하는 그림으로 돈을 벌어봤지만 다른 사람 구미에 맞춰 그리자니 좋아하는 일도 한낱 노동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맞게 그리고 쓰자니 돈이 안되고, 설령 돈이 되더라도 완성도와 마감 스트레스는 또 어찌할꼬. 즐겁고 행복하게 돈을 버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오아시스를 찾고 있자니 답답하고 허무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직업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 내가 지구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 모두가 나의 글과 그림을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소소한 재능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찌감치 분수를 알자. 지구에 두발 딛고 사는 지구인으로서 내 입에 풀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으면 직업의 의미는 충분하다. 물론 여기에 '좋아하는'이 추가되면 더 좋겠지만 '좋아하는'을 직업으로 삼다 소중한 '좋아하는'까지 질릴 수 있으니 '좋아하는'은 어디까지나 '좋아하는'으로 두는 것이 좋다.


내가 꿈꾸던 완벽한 직업. 환상 속의 그대여 안녕! 전 이제 무념무상으로 생활비 벌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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