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사러 수족관에 갔다. 키우던 물고기가 죽고 한참만의 일이다. 이번에는 더 잘 키워야지 다짐하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묻고 챙겼다. 물고기와 함께 새우도 키우기로 했다. 체리새우는 작은 물고기보다 한참 더 작았다. 함께 키울 수 있냐는 질문에 함께 키울 수 있다고 하셨지만 사족이 붙었다. 새우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대체로 물고기와 잘 지내지만 새우가 허물을 벗으며 약해지는 시점에 물고기가 새우를 잡아먹을 수도 있으니 그때를 위해 새우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새우가 숨을 수 있도록 수초와 새우 놀이터라고 불리는 작은 큐브도 함께 준비했다.
집으로 돌아와 수초와 새우 놀이터로 어항을 꾸미고 미리 준비해둔 물을 담았다. 물잡이(어항 내 환경을 물고기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과정)를 해 물고기와 새우를 넣었다. 물고기들은 제 집인 줄 아는 듯 신나게 헤엄쳤다. 새우들도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찾아 수초와 놀이터 속에 쏙쏙 숨어들었다. 초록색 수초 사이로 새빨간 새우가 언뜻언뜻 보였다. 그 짧은 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헤엄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새우에게도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허물을 벗으며 약해질 때쯤에. 우리에게도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 우리에게 수초와 새우 놀이터는 자기만의 방일 수도 있고, 조용한 카페일 수도 있고, 주차장의 차 안 일수도 있고, 새하얀 호텔 방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약해진 나를 위해 숨을 공간을 꼭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누군가 괜찮냐고 위로를 건네면 왠지 안 괜찮아야 할 것같아서 더욱 우울해지고 마는 못된 마음의 소유자인 나는더욱더 혼자 숨을 공간이간절하다.
오늘 나의 숨을 공간은 아파트 단지 내 가장 구석에 있는 벤치다. 짧아진 해 덕에 어둑어둑해져 숨기에 더욱 안성맞춤이다. 무거운 가방을 한쪽에 몰아두고 벤치에 넉넉히 앉는다. 먼 산을 보며 미리 사 온 아이스크림 콘 껍질을 천천히 벗겨내고 한 입가득 베어 문다. 뭉근하게 부어오른 마음의 부기가 가라앉길 바라며 달콤하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더 베어 문다.아이스크림이 어느새 한입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 참 많이도 작아졌다. 혈당도 높은데 잘 됐지 싶다가도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작아진 아이스크림이원망스러워진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항을 한참 동안 바라볼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살아있으니, 살아가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면, 빨갛고 작은 새우가 더 빨갛고 더 짧은 다리를 쉴 새 없이 휘젓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 지니까. 그러면 내일은 숨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