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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Oct 05. 2022

호언장담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라고 하는 선언.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세계 최고 부자가 되겠다고 허풍을 떨기도 하고 벌써부터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고민하기도 한다. 자신이 영어를 너무 잘하게 돼 한국말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아이답게 깜찍하다. 이런 허세. 귀여운 허세. 저자의 말을 따르면 '부풀리기'. 아이들의 부풀리기를 다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도 분명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이 나의 미래가 될 줄 알았던 그때,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지구를 구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힘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기대가 깨지고 나서도 당연히 서울대에 줄 알았고, 영화 같은 사랑 몇 번쯤은 할 줄 알았고, 30대가 되면 번듯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하루를 거뜬히 보내던 날들이 이제 까마득하다. 한 뼘씩 자랄 때마다 한껏 부풀었던 마음은 점점 작아졌다. 세상에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난 후 꿈꾸는 일을 멈추었다. 더 이상 '만약에'라는 단어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될 리 없으니까.


'만약에'를 잃어버린 우리는, 부풀리기를 잊어버린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그어놓은 경계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돌고 돌아도 언제나 똑같은 풍경, 똑같은 나, 똑같은 인생. 정말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이제 더 멀리 가보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다시 허세 좀 부려볼까? 예전처럼 귀여운 허세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허세라면 지금도 가능하지 않을까? 100세 시대인데 아직 나도 충분히 풋풋하다. 쑥쑥 더 자랄 수 있다.


딱 보면 누구 것이다 알 수 있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이 내 글과 그림을 보고 위로받고 행복해하면 좋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어야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낯간지럽지만 여기까지 내 세계를 넓혀보겠다고 선언해본다. 그 부풀리기가 두둥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라며. 아니면 그 언저리까지라도 갈 수 있지 슬쩍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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