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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Oct 12. 2022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운전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소망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차가 없으면 걸어가면 되고, 버스를 타도 되고, 택시를 타도 된다. 하지만 가끔은 간절히 우리 집에도 차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차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운 일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른이 되면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첫 번째 기회는 수능을 보고 나서였다. 많은 친구들이 대학 입학을 기다리는 동안 운전면허를 땄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학에 가면 기숙사 생활을 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차가 필요 없었다. 당연히 차를 살 돈도 없었지만.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어차피 나중에 다시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일리 있게 들렸다. 사실 귀찮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지만. 그렇게 첫 번째 기회를 떠나보냈다.


세월이 흘러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신분증은 주민등록증과 여권뿐이었다. 운전은 10년 넘게 버킷리스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때론 너무 간절히 바라 이루기 두려울 때도 있다. 아니, 너무 간절해 이루지 못할까 봐 시작도 못하는 것일 수도. 사실 운전이 뭐라고.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랬다. 열심히 핑곗거리를 찾았다. 돈이 없어서, 돈을 아끼려고, 주차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대중교통이 편리해서 등등 이유는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운전은 건물주같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다. 그즈음 두 번째 기회가 왔다. 결혼을 하고 남자 친구의 중고차가 우리 집의 중고차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차가 생긴 것이다. 남편은 평일에는 차를 사용하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는 차를 내가 운전하면 될 터였다. 차도 준비되었으니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되었다. 곧 운전면허시험이 어려워질 거라는 확실한 소문이 돌았다. 완벽한 상황이 나를 운전면허학원으로 이끌었다. 한 성실하는 나는 빼먹지 않고 열심히 운전면허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성실이란 놈이 실력을 발휘하기에 한 달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어찌어찌 운전면허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하기는 했지만 차마 운전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즈음 조카가 걸음마를 시작했다. 저 아이가 잘 걸을 때쯤에는 나도 운전을 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40시간 연수를 받았지만 시간만 흘려보냈다. 연수가 끝나고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무서워서, 귀찮아서, 어차피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사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조카가 걷고 뛰고 한 발로 균형을 잡을 때까지  운전면허는 장롱면허를 면치 못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고 육아휴직 끝에 복직이 코 앞에 다가왔다.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 아이를 돌보려면 이제 정말 운전이 필요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마음가짐이 달랐다. 간절했다. 일단 해보자. 매일 운전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다. 운전 연습할 생각을 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되면 갈까, 말까 몇 번씩 고민했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하기로 약속했으니 굳게 마음먹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고 쿵쿵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도로에 나가면 모든 차들이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리 정해둔 동선을 끝까지 완주했다.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했느냐, 안 했느냐이다. 일단 그냥 하는 거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했으니 충분히 잘한 것이다.


그렇게 3달을 보내고 복직을 했다. 출퇴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매일 운전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어느새 이년이 지났다. 도저히 괜찮아질 것 같지 않았던 운전도 차차 익숙해져 갔다. 운전대를 잡으면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가 점점 부드러워지고, 어느새 음악을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아직도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했지만 익숙한 길에서는 잠깐의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차선을  변경할 때 더 이상 빵 소리를 듣지 않고 시동을 끄지 않고 차에서 내리는 일도 없고 비상등을 안 꺼 방전되는 일도 이제는 없다. 드디어 나도 운전인이 된 것이다.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기동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운전대를 잡고 온전히 내 힘으로 원하는 곳을 향할 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영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던 일을 해냈다. 운전을 할 때마다 해냈다는 성취같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 성취가 주는 달콤함과 편안함을 매일 누리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해내는 첫걸음은 일단 하는 것이다. 계속하는 것이다. 절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내일의 나는 더 나을 거라는 오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꾸준히 하는 것이다. 운전 선생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은 멀리 보고 천천히 가라는 것이었다. 이 진리는 운전에도, 인생에도 적용된다. 운전을 할 때 멀리 봐야 균형을 잡기가 좋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도 좋다. 인생도 멀리 봐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발 끝만 보고 조급해할 필요 없다. 빵 소리를 듣더라도 규정 속도 내에서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한다. 쌩쌩 스쳐가는 차들을 보며 분수에 맞지 않게 액셀을 밟으면 절대 안 된다. 그러다가 큰일 난다. 어차피 가다 보면 누구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마련이니까. 천천히 가자. 내 속도대로.


누군가에게는 고작 운전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려 운전이었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을 넘었고 어떤 일도 끝내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만나는 수많은 산들도 이 방법대로 잘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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