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라고 하는 선언.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세계 최고 부자가 되겠다고 허풍을 떨기도 하고 벌써부터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고민하기도 한다. 자신이 영어를 너무 잘하게 돼 한국말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아이답게 깜찍하다. 이런 허세. 귀여운 허세. 저자의 말을 따르면 '부풀리기'. 아이들의 부풀리기를 읽다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도 분명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이 나의 미래가 될 줄 알았던 그때,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지구를 구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힘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기대가 깨지고 나서도 당연히 서울대에 줄 알았고, 영화 같은 사랑 몇 번쯤은 할 줄 알았고, 30대가 되면 번듯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하루를 거뜬히 보내던 날들이 이제 까마득하다. 한 뼘씩 자랄 때마다 한껏 부풀었던 마음은 점점 작아졌다. 세상에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난 후 꿈꾸는 일을 멈추었다. 더 이상 '만약에'라는 단어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될 리 없으니까.
'만약에'를 잃어버린 우리는, 부풀리기를 잊어버린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그어놓은 경계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돌고 돌아도 언제나 똑같은 풍경, 똑같은 나, 똑같은 인생. 정말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이제 더 멀리 가보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다시 허세 좀 부려볼까? 예전처럼 귀여운 허세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허세라면 지금도 가능하지 않을까? 100세 시대인데 아직 나도 충분히 풋풋하다. 쑥쑥 더 자랄 수 있다.
딱 보면 누구 것이다 알 수 있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이 내 글과 그림을 보고 위로받고 행복해하면 좋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어야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낯간지럽지만 여기까지 내 세계를 넓혀보겠다고 선언해본다.그 부풀리기가 두둥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라며. 아니면 그 언저리까지라도갈 수 있지 슬쩍 기대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