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음식을 정말 싱겁게 먹는다. 비빔면을 끓여도 소스를 반만 넣고, 라면에 김치를 곁들이지도 않는다. 허연 비빔면과 김치 없는 라면을 무슨 맛으로 먹는담. 참 별난 입맛이라고 핀잔을 주다가 문득 내 인생에도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맛도 저 맛도 아닌 맛. 시시하디 시시한 맛.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사는 인생 폼나고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대가 끝나가는 무렵까지도 내 인생에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였다. 덜덜거리는 티코 같은 내 인생을. 그리고 가끔은 감사하기도 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하루가.
코로나 19로 얻은 것이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일 것이다. 처음 코로나 19의 공포가 성큼 다가왔을 때 매일 들르던 마트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배달로 해결하고, 큰 마음먹고 마트에 갈 때면 마스크와 비닐장갑으로 중무장했다. 거리에 인적이 드물어지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우연히 사람들을 마주쳐도 서로 피해 가기 바빴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웃이 아니라 바이러스 숙주일 뿐이었다.
아직 말도 안 트인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려고 실랑이하다 결국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코로나 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문가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두려웠다. 처음으로 아이를 낳은 것이 후회되던 날이었다.
봄이 봄답지 않게 지나갔다. 꽃들은 외롭게 졌다. 여름이 여름답지 않게 지나갔다. 바다는 고요했다. 가을이 가을답지 않게 지나갔다. 단풍은 하릴없이 낙엽이 되었다. 겨울이 겨울답게 않게 지나갔다.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이 낯설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빛이 보였다. 백신이 개발되고, 바이러스는 퍼져갈수록 치명률은 약해졌다. 코로나 19에 대한 공포도 익숙해졌다. 물론 조심 또 조심하지만 지피지기 하니 2년 전처럼 두려울 것도 없었다. 두려움보다 일상에 대한 갈증이 더 컸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조금씩 일상을 회복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람들을 만났다. 봄에는 꽃을 보러 가고, 여름에는 바다를 찾았다. 가을이 되면 2년 전 보았던 단풍을 보러 갈 것이고 겨울이 되며 신나게 눈싸움을 할 것이다. 이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지난 2년을 통해 눈물겹게 깨달았다. 우리에게 시시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특별해졌다.
그렇다. 내 인생도 시시해도 시시하지 않다. 당연하듯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멋진 순간인지 이제는 안다. 평범한 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나는 안다. 오히려 시시해서 좋다. 원래 시시한 사람이니 부담 없이 마음껏 시시하게 살아도 되니까. 찬찬히 뜯어보면 똑같은 날이란 없고, 찬찬히 뜯어보면 시시한 인간에게도 괜찮은 구석도 있다.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싱겁디 싱거운 밥상도 내 입에 맛있으면 그만이지. 싱겁게 먹으면 건강에도 더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