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쇼를 참관하며
작년(2023년)에는 커피를 혼자 내린 지 1년이 되기는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커피 맛도 모른 채 무작정 내리기만 했었다. 아는 곳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국내 유명 유튜버에 나온 인물들만이 내가 아는 커피인의 전부였다.
작년 카페쇼를 돌아보면, 저는 단순히 커피에 대한 호기심만 있었을 뿐, 업계나 사람들에 대해선 거의 몰랐다. 혼자 돌아다니며 부스를 둘러봤지만, 사람들과의 소통도 거의 없었고 그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 머물러 있던 ‘나’만 존재했다.
특히 카페쇼에서 가장 줄이 길게 늘어지는 '커피앨리'는 거의 둘러보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커피앨리'는 국내외 유명 로스터리 카페들이 모여서 부스로 자리한 공동관이다. 오후에는 이미 엄청난 줄이 늘어져 있었고, 후에 들어보니 보통은 두 시간 기다려서 들어간다고 했다. 카페쇼에 입장하기 전에는 몰랐었다. 다음에는 '커피앨리'를 첫날 꼭 오픈런을 해서 들러볼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작년의 나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부스를 지나치기만 했고, 그 수많은 커피인들 사이에서도 스스로는 외딴섬처럼 동떨어진 존재였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혼자서만 걷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했고, 나 역시 그들을 알지 못했으니….
지난 카페쇼에 비해서 참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비록 알바에 불과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고, 따로 만날 만큼 절친한 사람은 없지만 여러 커피 관련 행사와 카페투어를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연락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커피를 아는 사람들'의 세계에 가까워진 셈이다
이번 카페쇼에서는 작년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커피앨리에도 오픈런으로 빠르게 들어갔고, 세계적 로스터들의 커피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단순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서, 나아가 커피업계에 발을 디디고 배우려는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실감했습니다.
이번 카페쇼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돌아다녔다. 몇 번 만남과 연락을 주고받은 덕에 비교적 익숙한 분들께는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할 수 있었다. 여러 번 얼굴을 뵙고도 인사를 못 드린 분도 계셨는데, 오히려 그분께서 먼저 알아봐 주시고 인사를 건네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다음에는 꼭 내가 먼저 인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두 번만 봤던 분들께도 부끄러움에 망설였지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커피앨리'에 참여하시는 카페 사장님들과 직원 분들 중에도 이미 아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개중에는 인스타로만 알던 분들도 있어서 티는 내지 않고 내적 친밀감만 가진 분도 있었다. 나중에 따로 메시지를 드리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분들도 있었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커피앨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새롭게 다녀온 카페 사장님에게서 커피앨리에 빠르게 입장하는 꼼수를 들었다. 덕분에 오픈런을 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커피앨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일본의 '리브스 커피 로스터스'에서 제일 빨리 시음을 하고 원두를 구매할 수 있었다. 맨 앞에서 리브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기다리던 시점에 이미 줄이 늘어져 있었다. 당시 맨 뒤에 있던 사람은 30분 이상 기다려야 커피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브루잉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4:6 레시피'의 2016년 월드 브루어스컵 챔피언 테츠 카스야의 '필로 코페아'도 여유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작년과 올해 초의 커피 관련 행사들을 통해, 이런 전시회에서 커피 장비와 원두를 큰 폭으로 할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외할머니에게서 받는 용돈 이외의 수입이 없어서 원두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커피 엑스포 때는 아빠에게 염치없이 5만원을 빌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알바를 통해 원두를 살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싸며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해외 로스터리의 원두를 넉넉히 구매했다. 국내 로스터리에서는 내가 자주 다니는 카페의 원두를 소량 구매하거나, 알바하면서 마실 드립백 등을 구매하였다. 그렇게 총 20만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다.
아는 정보도 늘어서 국내외 여러 챔피언들의 커피를 이리저리 시음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친 분들도 꽤 많이 있었다. 길을 헤메기도 하고 시간과 마실 수 있는 커피의 한도도 있었다. 내년에 참석할 때에는 동선과 시간을 계획적으로 분배해야겠다.
앨리 외곽 부스에서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3월에 커피 구독자 모임을 주최하셨던 분이었다. 그때 그분이 "이제 종종 보게 될 거예요"라고 하셨지만, 그분의 이직과 바쁜 일정으로 다시 만나기까지 9개월이나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알아봐 주셨다. 이제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분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들었다.
"돈을 많이 버셔야겠어요."
주변이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환경이라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아마도 원두를 20만원어치나 샀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에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커피는 내 삶의 일부이고, 그만큼 투자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작은 원두부터 장비, 교육까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 돈을 쓰는 일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도 한다. 과연 이 소비와 투자가 먹고 사는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요즘엔 종종 카페 창업에 대한 생각도 한다. 결국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창업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먼 이야기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억 단위 자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대출을 받으려면 상환 능력도 갖춰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에게는 대출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앨리에서 마주친 그분과의 대화는 내게 새로운 목표를 다시금 각인시켜주었다. 돈을 번다는 것, 그리고 나의 꿈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는 커피와 함께할 수 있는 일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작은 꿈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려면 오늘부터라도 그 말을 되새기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