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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Nov 15. 2024

세 달을 버티고, 이제 다시 바뀔 때

.2024.11.13


근로 계약서에 기입된 날짜가 끝났다.

근로 계약서에 기재된 날짜가 11월 10일로 끝났다. 8월부터 시작해 지난 3개월 동안 계약이 이어졌고, 딱 이 기간까지만 버티는 게 1차 목표였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이미 한 번의 해고를 겪었고, 지나면서 스스로  일머리에 자신이 없어졌다. 눈에 띄는 열심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시킨 일에 빈틈을 달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엄마 말마따나 지인을 통한 알선이었기 때문에 잘릴 위험이 적을 수는 있었을거고, 편의점 사장님들도 누군가를 쉽게 자르실 분은 아니란걸 일을 하면서 알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은 항상 조심을 하게 된다.


계약서의 기간이 끝났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해야하나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만 두라는 말은 따로 없었으니, 내일도 일단 출근을 해볼 생각이다.

 

사장님을 본지도 이제 두 주가 넘었다. 한 번은 해결이 되어서 사소해진 사고를 쳐서 였었다. 그 이후로 혹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


세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면패턴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여전히 5시 즈음에 일어나려고 신경을 쓰다보니 밤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 알람을 분명히 켜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람을 믿지 못하는걸까.

 

고백하자면 지지난주에 딱 한 번 지각했다.

보통 5시 즈음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지만 아직 몸이 피곤해서 한 번 잤다가 다시 일어난다. 보통은 15분 내외였다. 그러나 이미 눈을 떴을 때 6시였다. 집에서 멀지 않아, 세안하고 옷만 갈아입고 곧장 뛰어갔었다. 그렇게 도착한 시각이 6시 10분이었다.


그전까지 늦지 않고 항상 10분 가까이 일찍 출근하긴 했었다. 10월달이 단기 알바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바쁜 달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지각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지난번에 이미 사고도 쳤었기 때문에 이 일로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사고를 쳤을 때와는 달리 별다른 연락이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그렇고 이미 2주동안 일을 했다.




편의점 일을 하고보니 가끔씩 다른 편의점을 들리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러면 생각보다 관리되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곤 한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건 곳곳에 보이는 빈칸들이다. 재고가 없어서 비워진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편의점에 비해서 다른 편의점을 들릴 떄마다 과자와 음료에 빈 공간이 훨씬 많이 보인다. 이런건 아마도 정성의 문제로 느껴진다. 


어제 영화를 보러 가다가 들린 한 편의점은 캔 정렬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캔 하나가 삐죽 눕혀 튀어나와있었다. 가끔 넣다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항상 첫캔만 그래서 넣으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따로 세워주기 참 귀찮은 부분이긴 하다. 그래도 손님 입장에서는 쉽게 눈에 띌테니 허술함이 금방 눈에 띄기 쉽다. 


사람들이 나가고 나면 지나간 자리를 항상 살펴보고 정렬하거나 채웠었지. 그럼에도 시킨 것 이상을 하지는 않아서 스스로는 평균에 밑도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 편의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직까지 나보다 딱히 정돈을 잘 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자만을 하게 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게 새롭고 긴장되었다. 물건 하나를 진열할 때도, 손님과 대화할 때도 온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 진열대 정리도, 재고 확인도, 캔 바로잡기도 이제는 그저 일상적인 루틴이 되어버렸다. 


이런 익숙함이 때로는 위험하다는 걸 안다. 지각했던 그날처럼, 매너리즘은 은근슬쩍 나태함을 불러온다. 예전에는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이 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직은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또래들은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이미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글이나 인스타 들을 살펴보면 10년차가 넘은 사람들도 종종보게 된다. 누군가는 승진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이직을 고민하겠지. 나는 아직 시작점에 서있다. 예전 사장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취직보다는 창업을 고민해야 할 나이일지도 모른다. (https://brunch.co.kr/@markvii/83)


이제는 진짜로 변화가 필요하다. 단기 알바로 모은 돈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앞선다. 항상 실패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확실하지 않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볼때도 스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예고편도 보지 않지만, 평점은 눈여겨 본다.  늘 실패를 피했다. 하다못해 게임에서도 새로운 캐릭터보다는 익숙한 캐릭터만 골라 플레이했다. 실패를 피하려다 보니 도전도 없었고, 성장도 없었다.


투자라는 단어 자체가 무겁게 느껴진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만큼 여유자금도 넉넉하지 않은데, 어떤 발걸음을 해야할지 자꾸만 겁이나고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종잣돈이 필요하다. 마치 겨울잠을 자기 위해 더 많은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버는 편의점 50만원 혹은 근근히 버는 단기알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시간 알바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 


처음에는 편의점 일도 버거워서 다른 알바는 생각도 못 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대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손님들과 가벼운 농담도 나누고, 진열대 정리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3개월이란 시간이 내게 이만큼의 여유를 가져다줬다면, 이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 때가 된 것 같다. 하나의 알바로는 목표한 금액을 모으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대로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미루다보면, 결국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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