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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Nov 01. 2024

처음으로 밥 사드린 날

2024년 10월 31일


아침, 언제나처럼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뭐하냐?" "엄마는 외할머니댁 가신다던데."


이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얼마 전에도 조용히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다.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빠가 덤덤히 말씀하셨다.


"엄마가 외할머니 병원에 모셔다 드릴 예정이라더라."


두 달쯤 전, 외할머니가 무릎을 찧으신 뒤로 절뚝거리시긴 했지만 큰 불편 없이 생활하시는 걸로 알았다. 이번에는 더 진지하게 모녀끼리 이야기할 게 있는 건가 싶었다.


내가 원래 잡혀 있던 오후 일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유료로 예약한 스터디 모임이라 취소하기도 애매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환불이 가능했기에 미리 알았다면 취소했을 텐데, 오늘 아침에야 안 사실이었다. 어쨌든 환불은 불가능해졌고, 일단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매일 수영을 마치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고, 외할머니댁까지는 차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두 가지 일정을 동시에 소화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엄마가 오전 9시 반쯤 집으로 들어왔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라 의아했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내가 입을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와 함께 외할머니댁에 가려는 듯했다. 나 역시 엄마를 닮아 일정을 따로 말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엄마도 내가 스터디에 나갈 예정인 걸 몰랐다.


"할머니 병원 예약이 2시야."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미리 출발해 점심을 먹고,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가시면 잠시 기다렸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아빠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 그런 오늘의 계획을 들으며, 10시에 출발한다면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운전한다면 안 막히는 경우 50분, 막히면 1시간 반 남짓 걸릴 것이다. 설령 늦게 도착하더라도 대충 12시에는 도착할 터였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한 시간 정도 있다 나온다고 가정하면, 남은 거리를 찍어보니 스터디 장소까지 1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늦긴 하겠지만, 보통 스터디를 참여하면 한 명씩은 늦는 사람이 있었고 사전에 연락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괜찮겠다. 지금 출발하면 할머니와 점심을 먹고 스터디까지 참석할 수 있겠군.'


엄마는 나의 스터디 일정을 듣고 굳이 가야 하냐고 했다. 또 용돈 타 먹으려는 거지라고 물었다. 사실 그간 외할머니는 나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항상 용돈을 주셨다. 일을 하고 보니 한 번 갈 때마다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으니, 외할머니 말씀마따나 정말 '꿀알바'였다.


하지만 최근 몇몇 이유로 외할머니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고, 30 넘은 나이까지 돈을 타 먹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올해는 용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용돈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엄마와 차 안에서 대화를 했다.


"너 이번에 돈 좀 벌었으니 이번엔 외할머니한테 밥 한번 사봐."


엄마는 내가 용돈 타 먹는 시절부터 항상 돈이 생기면 무조건 한 번은 반강제로 쏘게 시키기는 했다. 외할머니와 점심을 먹으면 용돈을 안 주시더라도 점심을 샀기도 하고, 원래 식사에 무관심한 성격이라 조금 이쪽으로 생각을 틀었다면 곧장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딱 떠오르지는 않았었다.


엄마는 역시나 전혀 식당에 대해 생각해놓은 게 없었다. 나는 차멀미에도 불구하고 지도 앱을 켜서 평소 찾지도 않던 맛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엄마는 '파스타'가 포함된 식사를 하고 싶어 했으며, 근처 공원이 보이는 뷰가 있기를 원했다. 다행히 선택지가 두 곳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 둘마저 한 건물에 있었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막혔다. 중간에 도로공사도 있었고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는 사고 난 장면도 보았다. 그래서 거의 한 시간 반가량 걸렸다. 도착하니 12시. 조금은 빠듯한 시각이었다.


할머니를 태우고 곧장 미리 찾아둔 병원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같이 파는 집이었다. 공원 주변은 서울인 우리 동네보다 고층인 아파트와 상가들로 빼곡했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에서는 원래 합의한 대로 내가 계산하기로 했다. 말은 해야겠는데 뭔가 부끄러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치만 엄마는 그런 식으로 생색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알아서,


"오늘 커피러너가 알바로 돈 벌었다고 한 턱 쏜대."라고 툭 던졌다.


그 자리에서 예상했던 반응은 할머니가 적당히 거절하고 내시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엄마 아빠가 낼 때는 그런 모습이 있으니까. '아니 어떻게 손주가 푼돈 벌었는데 그걸 또 쓰게 만드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할머니는 "손주한테 밥 얻어먹는 게 처음이네. 잘 먹을게."라고 하셨다.


엄마와 나는 좀 의아한 반응이었다. 위로 사촌형이 하나 더 있었고 나처럼 은둔형 외톨이는 아닌지라 돈을 번지는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도 더 가깝기에 사촌형이 오히려 외할머니 손을 더 많이 탔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도 형을 나보다 더 아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형은 돈 한 푼 벌지 않던 나에게서 50만원을 꾸고 일언반구 없이 안 갚기도 했었다. 돈 빌려준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즈음 또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돈을 더 빌려달라는 말을 해서 그 뒤로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런 형의 짠돌이 성향을 되짚어보면 이해가 안가는 상황도 또 아니긴 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오랜만에 밖에서 먹어보는데 생각보다 만드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히 먹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항상 어른들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입장이라 이 이상으로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1시쯤 되어서 할머니에게 인사드리고 나왔다. 외할머니가 나를 보면서 고맙다고 했던 얼굴은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소중한 추억이 되는 걸까.


돌아오는 길에는 의외로 죄책감이 좀 먼저 들었다. 그동안 기부도 하고 돈을 벌고 나서 커피 선물을 했는데 왜 외할머니에게 밥을 사거나 선물을 할 생각은 못했었을까. 그런 마음이 조금 죄송하게 느껴졌다.


이제 외할머니는 보험도 적용되지 않을 만큼 연로하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뵙고 싶어서 오늘도 평소에 하지 않던 무리한 일정을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외할머니한테 용돈을 받은 만큼 베풀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자주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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