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첫 단기 알바
사회생활에서 인맥과 네트워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니 늦은 상황에서는 이런 동아줄 말고는 시작조차 하기 힘들다. 한 달 동안 이력서 내용을 바꾸어가며 120군데 넣었음에도 면접을 제안한 곳은 10곳은 채 안되고 고작 한 곳만 붙지 않았던가. 그마저도 3일 만에 잘렸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무능력함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공존한다. 또 관계가 더 얽혀있다 보니 자르기도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 테고 말이다.
이것을 ‘낙하산’과 같은 채용 비리로 보아야 하나 스스로 고민에 휩싸였다. 나에게 일을 마련해 준 가족과 친척분들에게 직접 물을 수도 없고 타인에게 말하기에도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존재라고 공표하는 꼴이라 속으로 끙끙 앓았을 뿐이다. 그래서 ChatGPT에게 이 상황을 ‘낙하산’과 같은 채용 비리로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줘서 일을 하게 된 경우는 일반적으로 "낙하산"이라기보다는 인맥이나 네트워크를 통한 자연스러운 취업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비공식적인 추천이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직장 내에서의 큰 권력이나 지위와는 무관합니다. 단지 가족이나 친척의 소개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게 되고 지원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는 흔히 있는 사회적 관계망의 활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ChatGPT라는 도구가 항상 정확한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흔한 사회적 관계망의 활용’이라는 말이 마음의 짐을 한 스푼 덜어주었다. 주어진 기회를 붙잡았을 뿐이다.
이번 단기 알바는 친척분이 마련해 주셨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오랜 기간 문화재단에서 비슷한 일을 하신 것으로 보인다.
몇 주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일정이 불과 이틀 전에 확정되었다. 처음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26일부터 일을 시작하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친척분에게 받은 첫 일정표에는 29일부터 다음 주 금요일까지로 적혀 있었다. 이때도 구체적인 시간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번 주 월요일에 다시 시간을 문의하자, 오히려 일정이 줄어 이번 주 금요일과 다음 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 이렇게 총 3일로 확정되었다. 이때까지는 오후 일정이라고 들었는데, 화요일에 다시 연락이 와서 금요일 일정이 오전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청소년 모집이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은 일 수는 그대로 일을 하지만 추석 이후로 미뤄질 거라고 하셨다.
처음 일정대로라면 주말 알바를 포함하여 10일가량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일정이 주말알바 포함 주 3일, 주 4일로 줄어들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특히 돈에 대해서도, 친척분이 다음 주까지 일한 급여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3~4일 일한 금액은 따로 주시겠다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안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도라 차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다행히 오셔서 태워주셨다. 아마 다른 알바였다면 이런 서비스는 없었으려나. 엄마는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일을 하는 곳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청소년 수련관이었다. 4층에서 청소년 대상 강의가 이루어진다. 강사를 따로 일회성으로 초청하셨고 이에 따른 준비를 돕는 것이 할 일이었다.
차에서 짐을 들고 내렸다. 보냉 박스에 인원수에 맞는 샌드위치, 물 약 300ml 페트병 20개 한 묶음. 그보다 적은 용량의 오렌지 주스가 낱개로 인원보다 조금 넉넉히 들어있었다. 체력장 꼴찌를 도맡아 한 몸으로도 한 손에 넉넉히 들 수 있는 무게였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모임이 어떻게 조직이 되는지. 청소년 수련관에 오는 것은 친척분도 처음으로 보이나, 이미 도착하신 몇몇 분들과 구면이셨다. 같은 기관은 아닌 듯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다른 기관과 같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추정해 본다. 그분들은 청소년과 함께 수업참석도 했다.
그중 두 분은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한 분은 도청에서 나온 공무원으로, 다른 한 분은 비슷한 재단에서 파견된 직원인 듯했다. 그분들은 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자리 잡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제야 알바를 시작한 내가 그들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약간의 열등감이 생겼다. 엄마가 준비해 준 옷을 대충 걸친 나와 달리, 그분들은 깔끔한 복장에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까지 신경 쓴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니 자신감이 조금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친척분은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직 너는 살 날이 많아. 요즘은 평균 수명도 길어지잖니. 그러니까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해나가면 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늦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방법이 없다.
들어가서 한 일은 수업 시작 전 필기구와 물을 각 학생과 참관하시는 어른들에게 나누어 준다. 끝. 친척분은 참관도 하는 거라고 먼저 말씀하셨으나 공간의 협소함과 강의자의 부담으로 인해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 동안 1층 로비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한 시간 반 동안에 이 글의 초고를 거의 적었다. 한 시간 반 이후 글을 적다가 강의실로 골아갔다. 강의 참석자들이 먹을 주스와 샌드위치를 냉동박스에서 꺼내 옆 테이블에서 집어먹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왔다.
남은 정리정돈도 난이도가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필기구들을 수거하고 의자나 책상 정돈하는 게 끝이었다. 돈은 꽤 받는 편이라서 어려운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너무 쉬워서 당황했다. ‘이러고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뭐가 더 있을까 싶었지만, 애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샌드위치와 주스를 모여서 먹은 뒤에 끝이 났다.
카페 알바나 편의점과 비교해도 이번 일은 너무 편했다. 오히려 금액은 두 배다 더 받는다. 물론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기에 책임감이 따랐다. 일을 하기 전에는 금액만 보고 조금 고된 일을 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여유로운 시간과 부담 없는 업무 내용에 내심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쉬운 일들이라면 나는 왜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걸까.
31년 동안 가끔 생각이 나면 한 번 이력서를 툭 던지고 번번이 거절당할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부정적인 상상만 하며, 막상 일을 시작하면 곧바로 잘릴까 봐 겁에 먹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니, 카페 알바는 단 3일만 했음에도 별것 아니었고, 편의점 알바나 다른 단기 알바들도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걱정이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상상했던 만큼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이 과장되었다.
이번 알바들을 통해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그때 멈추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작은 한 발짝이라도 내디뎌 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부정적인 상상만 하지 않고, '잘 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함께 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덜 불안해지고,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기회들을 최대한 붙잡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