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새로운 여정 01.

길 위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 쪽으로

새로운 여정

― "길 위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 쪽으로"



그 계절의 공기는 유난히 투명했다.

나는 짧은 메모 하나를 책상 위에 남기고,

오래 써온 백팩에 물병과 노트, 몇 권의 책을 넣었다.


도착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가장 빠르게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천천히 뒤로 밀려나갔고,

나는 더 이상 그것들과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동은 내게 작은 사치이자,

현실로부터의 예의 있는 도피였다.



도착한 곳은 동해 근처의 작은 도시였다.

커다란 광고도, 볼거리도 없고,

밤이면 거리의 절반이 조용해지는 그런 곳.


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고,

밤늦게까지 아무 이유 없이 산책을 했다.


그날따라 밤공기가 유독 맑았다.


가로등 아래 내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져 있었고,

나는 나란히 걷는 듯한 그 그림자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이제 우리, 조금은 덜 기대도 괜찮겠지.”



다음 날 아침,

바닷가 근처의 낡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주인은 은퇴한 교사였고,

카운터 뒤에 LP판과 화분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트를 펼쳤다.

어떤 스케치를 시작하려다,

문득 펜을 놓고 바다를 오래 바라봤다.


조용하고, 멀고,

깊은 것들만이

나를 붙잡는 느낌이었다.



카페를 나서려는데,

노란색 점퍼를 입은 여자가 문 쪽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작은 목례를 했다.


그저 그런, 아무 의미 없는 교차.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무언가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바닥에 부딪히는 시계 초침 소리,


그리고 다시,

그녀의 노란 점퍼.

그건 그저 옷 한 벌이었지만,

그 빛깔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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