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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18. 2024

한강에서

은이의 충실한 밥

"답답해"라고 후배가 비명을 질렀다.

집이 좁아도 너무 좁아서

바람 살랑살랑 부는 아름다운 봄날에,

집에 들어오면 숨이 막힌다는 다.

졸업하면다행히 취직이 된 후배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립은 했지만 

침대와 싱크대가 거의 나란히 있는 원룸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락 싸들고 밖으로 놀러 가고 싶어요."

응, 그건 해줄 수 있지.


친구들 사이에서 '집밥 트리오'라 불리는 은이와 후배와 다른  하나,

"돈 내고 맛없는 밥 먹으면 화 나!"와,

"을 왜 남겨?"가 강령이고,

부칙으로 "술 마실 돈이면 고기 사다 구워 먹지!"를 외치는 집밥 마니아들이다.

밥은 집에서!, 만이 아니라 도시락 싸들고 학교로, 야외로 행차하기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밥 들고 야외로 놀러 가자, 는데 의견이 일치했으니.

어디서, 언제, 무얼 먹을지부터,

음식을 어떻게 분담할지.

왈가왈부 논의를 벌인

토요일 아침, 한강공원에서 모이기로 결정했다.



며칠 , 구워 먹고 남은 항정살을 고추장 양념으로 볶았더니 맛있어서,

"항정살로 만든 제육볶음 어때?" 하는 은이 제안에,

"황송합죠"  손뼉을 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는 자신이 밥이랑 어머니 표 열무김치에 과일까지 책임진다 하.

후배는 "제가 부침개를 잘해요. 인스턴트 재료 사서 기름에 지질 뿐이지만요."

김치전과 감자전에 더해 계란말이까지 해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은이는 전날 밤 도톰하게 자른 항정살을 고추장 양념에 재워두고.

초무침할 미역은 불려두고 채소도 썰어놓았다.

당일 이른 아침, 목욕탕과 부엌을 오가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고기를 볶고.

화장품을 바르다 부엌으로 가서

불린 미역에 양파와 오이를 더해 새콤하게 무치,

장에 찍어먹도록 길쭉하게 썰어둔 당근과 오이를 통에 담았으며.

머리 말리고 옷 갈아입는 동안 보리차를 펄펄 끓여서.

바자회 때 썼던 식판까지 배낭에 넣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선다.


한강으로 가는 중에 톡이 울린.

집밥 호소인 하나가 소식 듣 달려오는 중이란다.

카페에서 아아 사줄게, 제 껴줘 잉.

와, 어서 .

하나쯤 먹일 분량은 되거든.

그래서 짜 맞춘 듯이 배낭 둘러메고 조거팬츠에 모자 눌러네 처자가,

5월 어느 아침, 한에서 도시락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봄 날씨는 예측불가라지만 이번 봄은 특히 기온이 들쭉날쭉해서 일일이 바깥기온을 살피고 옷을 골라야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미세먼지는 쫌 있지만요.)

이맘때는 아직 녹음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무럭무럭 자라나시기라서

풀과 이파리들이 하고 부드럽다.

도도하게 흐르는 파란 강물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그 사이를 짧은 바지 차림으로 달리기 하는 사람들,

헬맷에 몸에 붙는 옷을 갖춰 입은 자전거 행렬 울끈불끈 바퀴를 굴리며 슝슝 지나간다.

마땅한 장소를 찾던 넷은 풀에서는 벌레가 나올 거라 아침 볕이 짱짱한 시멘트 바닥돗자리를 .

식판에 촥촥 밥을 덜고 제육볶음을 덜고 열무김치도 덜어서,

중간중간 김치전, 감자전을 곁들이며 냠냠 짭짭,

맛있는 밥 앞에서 입은 먹으라고 있을 뿐이,

다들 조용히 밥만 먹고요.

배부르다면서도 그릇이 빌 때까지 수저 움직이는 속도는 줄지 않았으며,

과일 상자도 금세 빈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뜻한 보리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싹싹 비운 도시락 통을 챙겨 넣고,

쓰레기까지 싹 치우고는.

이제 걸을까?

많이 먹었으니 그만큼 움직여야 해,

배부른 넷합창했다.


솔솔 부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참 예쁘기도 하구나.

너른 강폭을 도도히 흘러가는 파란 강물을 바라보려니 가슴이 뻥 뚫린다.

좋아, 정말 좋아.

맛있게 먹은 으로 이미 세상이 밝아 보이는 데다

봄날의 풀과 물은 햇살에 빛을 뿜으니.

봄바람 날 불러내시고,

제육볶음 날 배부르게 하시니,

행복하고 행복하도다- 흥얼흥얼,

절로 노래 흘러나오네.


쉬다 걷다,  멀리까지 걸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일행은 카페에 들어갔고 노곤해져 말할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오늘 정말 좋았다고,

더워지기 전에 또 걷자고 한다.

남산둘레길이 좋대,

인왕산도 걸을 만하다던데?

이러쿵저러쿵 들은풍월을 읊다가.

각자 검색해서 코스를 정하자고 약속한 뒤,

오늘부로 집밥 클럽은 당분간 걷기 모임으로 전환한다! 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카페를 나와 헤어질 때 은이가 후배를 붙들었다.

내가 쿠폰 준다는 데 홀랑 넘어가서 온갖 휴지 종류, 치약, 세제 같은 생활용품들을 너무 많이 샀어.

물건 박스가 화장실 통로를 막아서 몸을 돌려서 지나갈 지경이거든.

우리 집에  필요한 거 가져갈래?


후배와 함께 집에 오는 길에 은이는 졸음이 쏟아져서,

뭐라 뭐하는 후배의 말이 귀를 스칠 .

비틀비틀 언덕 꼭대기 집에 도착해,

다시 돌아가려면 배가 고파질 후배에게 냉동실의 백설기 한쪽을 데워서 두유와 함께 차려주고.

후배가 먹는 동안 이는 주섬주섬 생활용품들을 골고루 한 보따리 챙긴다.

골목을 내려가는 후배를 손 흔들어 배웅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은이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속으로 .


한숨 자고 일어나서 세수해야지.

아웅, 너무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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