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후다닥 밥 해 먹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사건보다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 스스로 공언했던 대통령 탄핵 건은,
질질 끌던 변론이 종결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언급조차 없는데.
야당에 의해 탄핵되었던 불법, 위법의 도른자들은 모두 복직됐다.
내란 협력 혐의까지 받고 있는 노욕 그 잡채가 돌아왔다고 끼리끼리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보노라니,
헌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파면은 아니라는 판단은 도대체 어떤 법에 근거한 걸까?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저들이 어느 지경까지 법을 유린하고 나라를 망쳐놓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시국이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혹시 국민한테 총구를 겨눈 저 미치광이에게 다시 권한을 쥐어주려는 거야?, 불신이 들기 시작한다.
찹쌀풀을 쑨다.
젓고 젓고 또 저어요.
불을 끄고 찹쌀풀이 식는 동안 무말랭이를 손질한다.
무말랭이를 씻고 씻고 또 씻어서,
다시마 한 조각 넣어 물을 붓는다.
바싹 마른 무말랭이가 적당한 식감으로 불어나는 동안
식은 찹쌀풀에 고춧가루, 멸치액젓(집에 까나리액젓이 없으니까요), 국간장 조금, 설탕, 매실액, 다진 마늘과 생강가루, 술을 잘 섞어 양념을 만들어요.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면서 주말마다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은이조차 평온한 일상은 포기했다.
그림을 그리려고 도구를 꺼내지만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
책을 펼쳐도 같은 문단에서 시선이 맴돌아, 의미가 입력되지 않는다.
초콜릿, 사탕, 젤리 등등의 단 것에 계속 손이 가서 항상 속이 더부룩하다.
안 되겠어.
은이는 벌떡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한다.
겨울 내내 답답한 시국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자꾸 집안일을 하다 보니,
방바닥은 윤이 반질반질하고요,
빨아서 다림질까지 마친 포근한 침구는 사그락사그락 기분이 좋다.
냉장고에는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이 계속 쌓인다.
그래서 또 먹는, 반복, 반복. 무한 반복.
위장이 빌 새가 없구나.
장바구니에서 대파, 양파, 마늘을 꺼낸다.
대파 한 묶음을 풀어 흙을 털어내고 씻고 또 씻어서
장조림에 넣을 이파리들을 나누고,
볶음밥에 넣도록 파란 줄기를 잘게 다지거나
요리에 넣을 어슷썰기 등
각각 다른 크기, 다른 모양으로 썰어 냉동실에 넣는다.
마늘은 반을 덜어 편으로 썰어 역시 냉동실로.
요리할 때 꺼내기만 하면 되거든.
양파는 채를 치거나 깍둑 썰거나.
겉 부분은 오븐에 고기 구울 때 고기 밑에 깔려고 따로 모은다.
고구마, 감자도 껍질을 벗겨 납작납작 잘라 밀폐용기에 담는다
"혼자 살면서 음식에 뭘 이리 극성을 떨어? 할 일도 없나 보다."
은이가 차려준 밥상을 깨끗이 비우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골난 목소리에 힐난하는 표정까지 더해서.
가끔 이런 일을 겪는다.
대인관계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기어코 해버려야 얹힌 속이 뚫리는 유형.
본인이 왜 환영받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는 그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해서 아파트 단지 내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은이가 갔던 첫날,
신입을 에워싸고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이는 아이들 저편에서,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은이를 빤히 쳐다보던 한 학년 위 여자아이가 있었다.
며칠이 지나 그 아이는 은이에게 너는 옷이 왜 이렇게 많아!
너네 집 몇 동이야? 따지기 시작하더니.
큰 평수네, 너네 부자야?로 이야기는 진행됐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집이 작아졌다고 생각한 은이가 우리 집 작은데요? 했더니, 막 화를 내더라.
이후 그 아이는 은이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가방 어디서 산 거야!
맨날 머리핀이 바뀌네, 은이 머리에 꽂힌 머리핀을 잡아채려 거칠게 손을 뻗은 적도 있었다.
아버지 뭐 해? 그 아이가 물었을 때,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셨어요, 대답했는데.
그 뒤로 번번이 그 아이는 은이에게 메롱메롱하면서,
부모 없으니 넌 고아네, 고아 주제에 맨날 비싼 옷 입고 큰 집에 살다니, 참 웃긴다 야, 하면서 못되게 굴었다.
부모 없는 것도 사실이고,
맨날 맨날 예쁘게 차려입는 것도 사실이라 그 놀림은 은이를 전혀 "긁"지 못했는데,
그때 분명히 인식하지는 못했겠지만 어렴풋이 그 아이의 표독스러움에 내가 시달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은이는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일 년쯤 지나 아파트 단지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화창한 봄날.
은이는 영-선 남매와 함께 깔깔 웃으면서 햇빛 속을 뛰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날카로운 화살 같은 시선이 얼굴에 와 꽂힌다.
고개를 돌렸더니 건물의 어둑한 그늘에서 그 아이가 은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라.
잠깐 서로의 눈이 마주쳤지만 은이는 곧 영-선 남매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며 자리를 떠났다.
한참 지나서 비슷한 일을 또 겪었을 때 은이는 어둠에 속해있던 그 아이를 떠올렸고.
그 시선에는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좌절과 슬픔의 빛깔이 훨씬 짙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고 너그럽게 봐주려는 건 전혀 아니고요.
평소에도 그랬지만 더, 더 위선의 레토릭이 날뛰고 있다.
하느님, 예수님의 길을 전혀 따르지 않는 자들이 하느님, 예수님은 엄청 팔아먹고.
국민,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이 입만 열면 국민, 시민 타령이다.
위선의 레토릭을 일상적으로 떠들다 보니 스스로 세뇌됐는지
자기 호주머니에 돈 찔러 넣으면서 하느님 사업을 외치고,
업자와 짬짜미로 자기 재산 불리면서 국민 위해서라네.
이성이나 양심, 염치와 부끄러움은 아예 탑재된 바 없이.
오직 살아남으려는 비루한 욕망으로 아귀다툼할 뿐인 그들은,
남의 돈으로 유흥하고,
나랏돈으로 비싼 차 타고,
굽신굽신 대접받는 것으로 성공한 자신을 확인하면서 으스대지만.
내심은 그 성공이 진짜일까 믿기지 않는지 영 불안해하는데.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공고하게 꾸려온 자기들만의 먹이 사슬이 크게 흔들리는 이 시국에,
공짜로 사는 재미 절대 못 잃어, 하는 위기감으로 발작버튼이 눌렸으니.
그들 안중에는 나라도, 국민도, 하느님 예수님도 없거든요.
어린 은이를 괴롭히던 그 아이처럼,
지독한 열등감과 결핍감에 시달리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오직 돈과 지위만 쫓는 저들은,
여전히 자신을 휘감고 있는 깊디깊고 불행감에 허우적거리면서.
존재 자체로 눈부신 정직한 이들,
올바르기 때문에 떳떳한 이들,
선량한 국민들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실행하여,
높은 지지를 받는 몇몇 인물을 몹시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잘난 너네들, 완전히 부숴놓겠어! 광포하게 짓밟는다.
그런다고 오물통에 흠뻑 빠진 저들이 찬란한 빛 속으로 나오지는 못하리.
강물은 바다로 직진하지 않는다, 고 했다.
굽이굽이, 한 고개 두 고개 지치지 않고
끝까지 흐르다 보면.
마침내 푸른 바다에 이를 수 있겠지.
흙 묻은 쪽파를 한 단 사 와서 손질했는데 좀 귀찮기는 했다.
그래도 싱싱한 쪽파 한 단을 일일이 손질해서,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은 길이로 잘라 볼에 담고.
꼬들꼬들 적당하게 불어난 무말랭이는 물기를 꽉 짜서는,
고운 고춧가루로 색을 들인다.
그렇게 다듬은 무말랭이와 쪽파에 찹쌀풀에 섞은 양념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골고루 버무렸다.
재료 손질이 번거로워 그렇지 무말랭이와 쪽파로 담는 김치는 방법이 절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은이는 스스로 만들어낸 무말랭이 쪽파 김치가 자랑스럽다.
여기까지 이른 연유를 풀자면,
묶음으로 사면 가격이 저렴해지니까 무말랭이를 잔뜩 샀는데.
(식구가 적으면 마른 채소, 마른 버섯, 건어물 같이 건조한 식재료가 저장성이 좋고 먹기에도 유용하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해주셨던 방식대로 무침으로 해 먹었다.
그러다가 좀 다르게 먹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해서.
한동안은 또 마른오징어 조림에 무말랭이를 넣어봤지.
매운 고추로 칼칼하게 맛을 낸 오징어 무말랭이 조림은 아, 맛있었다.
그리 먹고도 남은 무말랭이를 바라보다가,
혹시 무말랭이로 김치 담는 방법은 없을까? 싶어서 검색했거든.
그렇게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어서 은이는 쪽파를 넉넉히 넣은 자기 방식의 무말랭이 김치를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고기와도 잘 어울리고.
계란 요리와도 서로 보완되며.
심지어 토스트랑 먹어도 맛있다.
그러니까 빵을 구워서 계란 스크램블, 소시지 구이와 무말랭이 쪽파 김치로 아침밥상을 차리면,
그 맛이 찰떡이라는 말씀.
큰 통으로 만들어도 금세 먹는다.
은이는 삶의 기본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배워왔고,
본인 또한 기본에 충실하자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신체를 튼튼히 하기 위해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마음은 평온함을 최우선으로 한다.
좋은 글을 읽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지.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감상하고,
고운 말을 쓴다.
그렇게 자신에게 좋은 것을 보이고 먹이면서 일상을 충만하게 살아가려 한다.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한 방법이라 믿으므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해서 그럴듯해 보이는 가상현실로 도피하자는 말이 아니다.
자기를 튼튼히 하여 마음에 여유를 갖춰서 불행과 부조리 범벅인 현실을 직시하고.
그래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실행할 힘을 낼 수 있다고 은이는 믿는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 방식은 자율적으로 실천합시다.
단지 함부로, 대충대충 살지는 말자는 뜻임.
인생의 무게를 너끈히 짊어지려면,
자기라는 존재가 튼튼해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