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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n 20. 2024

가지조림 계란밥

20240620 비 오기 전 흐림




작년엔 7월 즈음 가지 덮밥을 먹었던 거 같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 와서 좋아하는 토마토며 오이며 가지를 실컷 먹고 있다. 무더움과 찝찝함, 벌레와 모기의 무차별한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춘기 같은 여름이 병 주고 약주고, 밀당을 한다. 다행히 맛있는 위로를 받고 있으니 용서가 된다. 계속해서 후자에 포커스를 맞추고 지내보려 한다.



 땡볕에도 창가에 있는 룽지와 달리 꾸리는 부쩍 어둡고 서늘한 곳을 찾아다닌다. 소파 밑, 현관, 화장실 타일… 앞발을 숨기고 뒷발은 다소곳이 모은 자세로 올려다볼 땐 태평양 물개가 따로 없다. 자세히 보니 바다 사자다. 바보 집사는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 사진을 찍어 둔다. 고양이계에서 덩치와 귀여움은 비례한다는 주제로 학술지?를 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 핑계로 동네 고양이들은 초대해 자문을 구하고 그들의 인싸가 되고 싶다. … 선뜻 허락할지는 모르겠다.



 오전 집안일을 마무리해 놓고 그림작업을 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때를 쓰는 소리였다. 옆동 1층엔 가정집 어린이집이 있다. 날이 좋으면 종종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줄지어 나와 공원으로 가는 모습을 본다. 그 시간에 맞춰 룽지는 베란다 캠핑의자로 가 앉는다. 마치 자기가 전지전능한 존재라도 된 냥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렇게 미래의 집사가 될 운명들을 점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없지만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시골이 좋겠다. 어릴 땐 홈스쿨링을 하고 좀 크면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 대학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만 크고 작은 여행과 모험을 즐겼으면 좋겠다. 혼자서 밥을 차려먹을 줄 알고, 어른들을 공경하며, 친구가 많지 않더라도 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공부는 못해도 그만이지만 좋아하는 과목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나눌 줄 알고,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리 욕심이 많으니 나는 고양이나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보진 못한, 동경했던 삶을 대신해 살아주길 바라는 지도... 정작 세상과 아이는 다른 꿈을 품을 건데 말이다. 라디오 뉴스에서 올해부터 저출산 지원 정책으로 지원금을 년 500만 원 더 지급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오후 장을 봐야 돼서 이른 점심으로 간단하게 가지 덮밥을 만들었다. 졸인 가지를 올린 계란밥을 크게 떠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마트 전단과 채소가게 판매 리스트를 체크했다. 참외에 이어 자두와 복숭아, 살구, 초당옥수수도 나와있었다. 행복한 것도 잠시, 선택과 포기의 시간이 왔다. 두 식구이고 반려인은 신맛 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아 조금씩만 사 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결국 열 개짜리 참외 한 묶음만 사와서 반은 어머님댁에 보내기로 했다. 이미 냉장고엔 어제 사온 수박도 남아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자두와 복숭아는 유독 초파리가 많이 꼬이니 번거롭기도 하다. 일단 있는 거 먼저 먹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주말부터 장마라고 하던데… 장마가 끝나면 복숭아를 사다가 병조림을 담아 봐야겠다.




* 릴스로그 업로그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bgAvXv3YH/?igsh=NGZ6c21uZWt4NH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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