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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04. 2024

토마토 버섯 키쉬

토마토 버섯 푸딩

일러스트 : 장마모드 by 최집사



선풍기가 며칠째 교대 없이 풀근무를 서고 있다. 마음 같아선 보너스라도 두둑이 쏘아주고 싶지만 그것보다 휴가를 원하는 눈치다. 이러다 파업이라도 하면 감당할 수 없다. 조만간 승진을 시키고 작은 선풍기 한 대를 더 꺼내 인턴으로 둬야겠다.



장마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맑을 거라고 했다. 라디오에선 곳곳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 이곳 날씨를 두 번이나 찾아봤다. 창밖의 파란 하늘을 보아하니 나의 촉도 오늘은 쨍쨍 맑음이다. 이럴 땐 보통 빨래 본능이 발휘된다. 씻기 싫어하는 아이 옷 벗기듯 베개잎을 홀라당 벗겨 세탁기에 넣었다. 이불과 매트 커버까지 모조리 빨래를 돌리고 묘한 뿌듯함에 조커 미소를 짓었다.



세탁기 시간을 확인한 뒤 마트에 가려다 마침 장날이라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한산한 분위기였다. 즉석 두부 한 모와 당근, 찜 해둔 떡집에서 떡도 좀 샀다. 돌아오는 길 트럭에서 봤던 삼천 원짜리 수박도 지나칠 수 없었다. 아저씨가 두 덩이 오천 원에 가져가라 했지만 나의 이두가 오버하지 말라고 강력히 호소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박을 소분해 냉장고에 넣었다. 내친김에 도마도 소독해 햇볕에 말려 두었다.



 피자를 좋아하지만 도미노는 이제 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비슷한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 집에 있는 채소로 키쉬를 만들었다. 크게 보면 둘 다 오븐에서 굽는 파이류에 속하니 비슷한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을 사용했다. 원래 프랑스 지방의 전통 음식이라고 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보사노바 재즈도 틀어놓고 그곳을 떠올리며 기분도 내어 보았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를 섞어 내열 용기에 넣을 때 까진만해도 모든게 순조로웠다.



타지 않게 중불로 20분 정도 구웠나… 겉보기엔 좋았는데 꺼내어 잘라보니 안은 곤죽이었다. 20분을 더 구웠지만 끝내 메뉴를 푸딩으로 정정해야만 했다. 안타까운 비주얼에 내심 풀이 죽었다.



그래도 한 스푼 먹어보니 맛은 나름 괜찮았다. 계란을 넣었더니 에그타르트 맛도 나고, 토마토를 넣었더니 피자맛도 났다. 무엇보다도 푸짐하게 들어간 버섯과 마늘향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내가 만든 첫 키쉬 아니 푸딩은 쌀가루와 계란양을 좀 더 수정하면 다음번엔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올 거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본 적 없는 음식을 만든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첫 오류가 진화의 발판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몇 번 후에 완성될지는 몰라도 언젠가 나만의 채소 키쉬가 완성된다면 그땐 초를 꽂고 자축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_i0g5vP8x/?igsh=MXIwb2hiYjlybXh0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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