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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18. 2024

가지 장아찌 냉파스타

라면만큼 즐거운 요리

일러스트 : 냥캉스 by 최집사



18일이다. ‘18일’이어야 한다. 푹푹 찌는 날씨에 우발적 소나기가 비우발적으로 내린다면, 미성숙 자아는 필연적으로 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침에 반려인이 출근하고 물기 가득한 화장실의 벽이며, 세면대며, 변기를 차례로 닦고 나왔다. 산발한 머리로 유능한 엔지니어인 척 인중의 땀을 훔쳤지만, 냥이들이 차례로 누구랑 싸웠나고 물어봐주었다. 갱년기지만 성장기처럼 땀을 난다. 벤자민 버튼처럼 마음만큼은 회춘하는 중이라 믿고 싶다.



데자뷔처럼 아침을 차려 먹었다. 오늘도 루틴처럼 룽지가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이번엔 단단히 마음을 먹고 괜한 오해(방토를 내어 줄 거라는) 하지 않도록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는 포기한 듯 터벅터벅 작은방으로 갔다. 단념했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우다다다다 ‘ 뒤를 돌아보니, 보란 듯이 털공을 몰고 와 내 쪽으로 패스를 했다. 조기 아니, 조식 축구…  이 아이에겐 지금의 시간이 그렇게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그 덕에 바지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분다. 냥이들이 베란다에 나가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이만한 넷플릭스가 없다는 걸 알기에 따라서 캠핑의자를 펼치고 옆에 앉았다. 1억 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멍을 때렸다. 사실 그 시절엔 모닥불 예능이 인기였다. 머릿속 저편으로 할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몸은 좀 더 앉아 있으라 했다. 20대 초반 신우염을 앓고 그 뒤로 두 번의 결석을 앓았다. 그것도 모자라 재작년엔 암이 찾아왔다. 수많은 알바와 야근과 추가 근무로 학자금을 갚고 다시 돈을 모아 결혼을 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몸값은 하향세를 탔고, 고된 노동은 거짓 만성이 되었다. 몸은 언제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젠 마음이 아닌 몸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구와 나는 같은 계절을 나고 있다. 온난화… 호르몬약을 복용 중인 관계로 몸에 열이 넘쳐난다. 무슨 하마처럼 땀이 흐른다. 그러다 불현듯 한기가 들면 지푸라기 인형처럼 재채기를 한다. 들쭉날쭉한 마음처럼 몸도 파도를 탄다. 이럴 땐 누가 옆에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리석은 세치 혀로 족히 수 백 명은 명중시켰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건 귀한 마음이다.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비교하고 시기하게 되지만 마음 안에 있으면 그리워하고 기다리게 된다. 물론 냥이들은 예외이다. 그들에겐 일정 수위 이상 짜증 내지 못하는 락이 걸려있다. 24시간 내내 붙어있어도 우려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날씨가 몸에게 쉬어라고 지시한 관계로 간단히 냉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이럴 땐 지난주 얻어온 장아찌가 큰 힘이 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보리 국수를 삶고 가지도 칼집 내어 노릇하게 구웠다. 면에 올리브 오일과 오레가노, 장아찌 양념도 한 국자 넣어 버무렸다. 라면만큼 순식간에 완성된 그럴듯한 한 끼로 허기를 채웠다. 익숙하지 않지만 그림 그리듯, 글을 쓰듯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단조로운 밥상에도 리듬이 생긴다. 어찌 보면 요리하는 즐거움이나 음악 하는 즐거움이나 비슷한 결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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