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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12. 2024

오트밀 와플

벨기에식 가을 맛



 여름이가 떠날 생각을 않는다. 계약 만료로 이사를 보내야 하지만 요즘 불경기라 새 집을 구하지 못했단다. 지난주 가을이 왔다고 착각하고 에어컨 덮개도 야무지게 씌워뒀는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려 요즘은 선풍기 두 대를 끌어안고 산다. 아니면 녀석이 다시 온 건지 모르겠다. 빛의 속도로 지나간 계절들을 느끼지 못했을 뿐, 가을과 겨울과 봄은 이미 다녀갔을 수도 있다. 퇴근하고 돌아온 반려인을 보니 헛소리가 절로 나왔다. 잠자는 숲 속의 아줌마처럼 내가 1년 정도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나고 물었다. 알 수 없는 웃음에 그도 함께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또다시 초복인 척 백숙을 고았다. 목요일에 맞춰 딱 떨어지는 계란도 대량으로 삶았다. 오이 대신 이번엔 양상추도 해체에 씻어 놓았다. 찜통 같은 날씨에 불을 두 개나 피우면 주방이 폭발할 거 같아 닭을 넣은 전기밥솥은 베란다로 귀양을 보냈다.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모르지만 자고 있던 룽지가 따라 나와 쿠쿠 곁을 지켰다. 계란 물이 끓고 10분 타이머를 맞출 때마다 씨리를 불렀더니 꾸리가 자꾸 대답한다. 무언가를 바라고 반기는 눈치라 하는 수 없이 간식을 챙겨주었다.



원치 않는 방학을 연장하게 되었다. 그동안 덥다는 핑계로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죄다 미뤄뒀는데 다시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쯤 바느질 작업도 하고 도서관도 다녀야 하는데… 모르겠고 그냥 어디든 떠나고 싶다. 분명 365일 다 같은 24시간인데 나의 여름은 유독 더디고 비효율적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이 생긴 거실의 벽시계를 노려보며 묘한 죄책감이 든다. 너무 정직하게 사는 건 피곤하지 않을까… 시계를 조금 느리게 조절하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추워지면 떠오르는 와플팬을 꺼냈다. 각종 전과 떡, 호빵, 팥빵, 누룽지… 지금껏 수많은 재료들이 이 팬을 거쳐 벨기에 스타일로 리뉴얼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환생의 맛을 염원하며 오트밀을 구워보기로 했다. 방법은 예전에 쿠키를 굽는 방식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나절 두유에 불린다는 것, 그것만으로 걸쭉한 반죽이 완성된다. 여기에 으깬 바나나와 꿀, 시나몬 파우더만 넣으면 끝이다. 필요에 따라 물이나 두유로 농도를 맞추면 된다. 한 번에 성공하겠다는 결심으로 노심초사 와플을 굽고 난 후, 반으로 잘라 그 사이에 슬라이스 한 바나나를 넣고 포갠다. 그 위에 다시 사과를 올리고 꿀과 시나몬을 뿌린 뒤 고소한 땅콩으로 마무리하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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