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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Sep 26. 2024

마늘 버섯 새싹 파스타

신데렐라에게 파스타를



 2024년 여름이 막을 내렸다. 그리곤 가을 아니, 겨울이 왔다. 지난 저녁부터 한기가 돌더니 하루아침에 전기장판 신세가 되었다. 갱년기를 앓고 있는 변온 동물에겐 극강의 두 계절만 남은 셈이다. 번데기처럼 꽁꽁 싸매고 오들오들 떨다가도 돌연히 이불킥을 하며 선풍기를 켰다. 이젠 아침에 카디건 하나만 걸치고 산책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옷걸이에 걸린 들쭉날쭉한 계절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주말엔 여름옷을 정리해야겠다.



이제 발이 시려워 집에서도 양말을 신는다. 아침엔 화장실 정리하러 들어가면서 잠깐 벗어놨는데, 나와보니 한 짝만 남아있다. 신데렐라 놀이를 하자고…? 바로 옆에 꾸리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룽지도 먼발치서 지켜보고 있었다. 즉각 녀석을 취조했지만 예상대로 발뺌을 했다. 실제로 ‘아냐~‘라는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일까… 아님 공범이 있는 걸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하다가 베란다 문턱에서 나머지 한 짝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공소시효는 하루, 내일이면 저들도 잊어버릴 것이다. 심증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 …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지난 브런치북(이토록 하찮은 행복)의 퇴고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 새로운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과거의 글을 다듬는 작업도 의미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기억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역시 다시 읽으니 뭔가 오글거리고 부끄러워진다. 좀 더 다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기억들은 미래의 열쇠가 되어 주기도 하고, 어떤 사건들은 그간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지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느냐는 중요한 일이다.



 B형 간염 2차 접종이 있어 보건소에 다녀왔다. 날이 좋아 그런지 기분이 한 결 좋아졌다. 그제는 도서관, 어제는 잡화점, 오늘은 공원, 삼일 연속 핑계를 대고 외출을 하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짧은 계절을 만끽하려고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며 여행 같은 일상을 상상했다. 입맛도 다시 돌아와 돌아서면 허기가 진다. 반려인의 식욕도 부쩍 왕성해졌다. 우리의 몸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하면 동면, 동면하면 곰, 곰 하면 마늘, 마늘 하면 알리오 올리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다진 마늘을 듬뿍 넣은 오일파스타가 먹고 싶어졌다. 그 핑계로 오랜만에 냉장고를 열어 있는 재료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이름하여 마늘버섯새싹파스타. 우선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두른 팬에 다진 마늘을 볶은 뒤, 어느 정도 향이 올라오면 손질한 버섯을 넣는다. 버섯이 숨이 죽으면 들깨가루를 샤샤샥 뿌린다. 익혀둔 면과 면수를 붓고 달달 볶은 뒤 간장을 휘리릭 두드고 접시에 포슬포슬한 새싹채소를 깐다. 파스타를 돌돌 말아 올린 뒤 버섯으로 장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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