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할머니의 내공
느지막이 봄이 되면 감꽃이 핀다.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되는 연둣빛을 머금은 노란 꽃들이 나무마다 팝콘처럼 열린다. 그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달력을 보지 않고도 저들만의 계절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피어난 꽃들 중 자연이 랜덤으로 점지한 몇몇은 꿀벌 큐피드를 맞아 씨앗을 잉태할 준비를 한다.
감이 열리더라도 저마다 운명은 제각각이다. 울퉁불퉁 요상한 모양이 되기도 하고 설익기도 하고 양분이 부족한 작은 아이는 중도에 낙하해 거름이 된다. 수확의 시기가 오면 대부분 감들의 생은 막을 내린다. 뜨거운 햇살과 파란 하늘에 안면홍조 진단을 받고 인간들 품으로 오게 된다. 개 중 또 몇몇은 남겨지는 운명을 택한다. 달리기 직전 출발선에서 우르르 몰려나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몫을 자처한다. 결코 낙오되는 일이 아니며, 기다림과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번데기처럼 나무에 매달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욕망의 씨앗은 사라지고 촉촉하고 몰랑몰랑한 내면을 가지게 된다.
… 그러니 홍할머니를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12개 한 팩에 8천 원이었나, 마트에서 홍시를 보자마자 애지중지 데려와 꼭지를 따고 잘 닦아 얼려두었다. 그중 반은 김치통에 넣어 반려인 본가로 보내고 나머지 반은 나 혼자 몰래 야금야금 먹고 있다. 살짝 해동시킨 홍시를 커피잔에 넣어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벨기에 장날에 팔 거 같은 젤라또를 떠올린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변활동에 제동이 걸리니 상생의 의미로다가 요거트에 넣어 먹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수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난번 사다 놓은 알감자도 한참 남있으니 함께 넣어보는 실험을 강행했다. 오묘한 색과 생소한 질감, 오일 물감과 수채 물감을 섞는 느낌이랄까… 퍽퍽한 감자와 촉촉한 홍시가 제법 잘 어울리는 한 그릇이 되었다.
- 재료 : 홍시. 감자. 단감. 시나몬파우더. 두유
1. 찐 감자의 껍질을 벗긴다.
2. 홍시 속살도 함께 발라 넣는다.
3. 두유를 넣고 믹서에 간다.
4. 냄비에 넣고 시나몬을 뿌리고 끓인다.
5. 그릇에 담고 깍둑썰기한 단감을 곁들인다.
* 요리영상은 아래 링크에…
https://www.instagram.com/reel/DCaYXvGzmyZ/?igsh=MTF4Y3Buc3J6YnI4Y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