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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Apr 06. 2021

모로코 소묘

모로코는 오후 2시의 권태와 같다. 페즈(Fez)시장 한켠에서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 시샤를 핀다. 시장골목은 출구없는 미로. 향신료향 짙은 골목들이 연하여 얽혀있고, 그 좁은 통로를 사람과 고양이가 같이 걷는다. 길을 걷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막다른 골목. 뒤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고양이 몇 마리와 눈이 마주친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무두질을 잠시 멈추고 청년이 인사를 한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훔치며 박하잎 하나를 내게 내민다. 그의 앞니가 햇빛에 반사되어 순간 번쩍인다. 염색장 담벼락엔 소와 양가죽이 담요처럼 널려있고, 동물 사체의 비린내와 샤프란향이 지중에의 남풍에 섞여 사하라로 실려 간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세헤라자데가 흘러나온다. 하루 다섯 번 중 네 번째, 지금은 신을 위해 봉헌하는 시간. 때와 먼지와 피로에 찌든 한 순례자가 바닷가에 면한 금빛 모스크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다.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를 밟으며 고양이 한 마리가 팔자걸음으로 뒤따른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절규와도 같은 아잔 소리. 흠칫 놀란 녀석이 ‘야옹’ 비명을 지르며 도로를 가로질러 바삐 도망간다. 


일몰을 준비하며 사람들은 등피 燈皮를 닦는다. 날이 어두워지자 양가죽 램프의 흐린 불빛이 골목까지 새어 나온다. 외관을 타일로 두른 길거리의 카페들, 중정 中庭  화단 여기저기에 파꽃이 핀다. 터번을 눌러 쓴 중년 사내 둘이 아타이차를 마시며 껄껄대며 웃는 동안, 발치의 염소 몇 마리가 대가리를 맞댄 채 건초 더미를 뜯는다.  

날이 밝으면 한명의 사내는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지중해로 떠날 것이다. 날이 밝으면 또 한명의 사내는 산맥을 남하하여 '붉은 바다' 사하라로 흘러갈 것이다. 아랍어와 불어가 섞인 음울한 어조로 한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묻는다.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인가?


* 마지막 문장은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인용

* 이미지 : Thumblr "hello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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