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2024. 4. 17. 수]
날씨가 아주 화창한 수요일이다. 설레는 날씨에 출근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매일 들르는 커피숍에 갔더니 사장님 역시 날씨가 좋아 설렜는지 옷차림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인사를 건네며, “날씨가 너무 좋죠. 우리 다 째고 놀러나 갈까요?”하고 묻는다. ‘째다’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대학 때 중요한 친구들과의 약속들이랑 수업시간이 겹치면 어김없이 수업을 쨌다. 불성실한 학생처럼 보일지 모르나 수업은 째도 학교는 꼬박꼬박 갔다. 오랜만에 듣는 단어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내향인이라 정말로 사장님과 함께 나들이 간다면 입 꾹 다물겠지만, 그 말 자체가 설렜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발을 디디자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드문드문 창밖을 보며 ‘이런 날에는 나들이가 어울리지’하며 커피를 마셨다. 사장님이 내게 던진 건 질문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낭만이었나 보다.
지금처럼 눈부신 날에는 수업 대신 나들이를, 실연으로 눈물을 펑펑 쏟은 친구를 위해 밥 대신 낮술 들이켜던 날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낮술을 좋아한다. 얼굴이 빨개지는 건 창피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술은 깨니 저녁이면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그때처럼 무언가를 째는 순간은 다시없을지 모르지만, 잠깐이나마 그 기분을 다시 느끼니 반갑고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