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champions

반 고흐의 편지(3), 10월 2일 단상

by 김요섭


그들의 온도


그는 봉투를 열어 5만 원권 3장을 확인했다. 말없이 쫄쫄이 옷과 레슬링 슈즈를 챙긴다. 로고가 떨어지고 접착제 흔적이 남은 프로스펙스 가방에 넣었다.

"다음은 언제가 될지... 암튼, 몸 건강하게 잘 지내고, 그때, 또 뵙시다."

울티멧 워리어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대기실에서 짐을 챙기는 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링 위에서 얼굴을 맞대고 거친 호흡을 주고받던 활기는 이미 사그라든 지 오래다. 현실의 온기를 되찾은 그들은 평소보다 불과 0.5도가 높았을 뿐이다. 몇몇은 링에서 맞상대한 이를 찾아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격려를 하거나, 다친 부위를 쓰다듬기도 한다.


아이언맨이 그에게 다가왔다. 철제의자로 맞은 오른쪽 어깨는 붕대가 칭칭 동여매져 있다. 남자는 다짜고짜 그를 와락 끌어안는다.

"형님! 으으윽~"

그들은 자신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아직 남자의 몸은 식지 않았다.

"어찌 몸이 더 좋아지셨어"

"그래 아우는, 어깨는 좀 어때? 괜찮나? 나이가 드니 조절이 잘 안돼"

"정신 차리고 살아라는 채찍으로 알지요"

"그래, 현장 일은 할만하고?"

"코로나로 겨우 풀칠합니다. 에휴, 이게 언제 끝날지..."

말을 할수록 그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이마에 짙게 파인 골 어딘가, 처진 어깨와 가방의 거친 주름 사이 자신도 모르게 검은 그림자는 드리워져있다. 어떤 행사도 없던 터에 연맹 차원의 자선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남자의 온도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그는 대기실에 홀로 남았다. 양쪽 무릎이 욱신거린다.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을 찾듯 가방을 뒤진다. 양봉하는 친구가 준 검은색 벌통을 꺼낸다.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꿀벌을 집었다. 파닥거리는 것의 꼬리를 자신의 무릎을 향해 갖다 댄다. 퍼덕이던 벌은 온 힘을 다해 침을 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움직임을 멈췄다. 양쪽 무릎 곳곳에 봉침을 놓고 난 그는 욱신거리는 무릎을 두 손으로 주물렀다. 그래도 침을 놓고 나면 통증이 덜했다. 폭력적으로 온 것은 그에 걸맞은 강도가 있어야 하기에. 그는 바닥에 떨어진 벌을 정성스럽게 벌통에 다시 담았다. 죽어버린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직 안 가셨네요"

행사 진행요원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정리를 해야 하니 가 달라는 투였다.

"예, 곧 갑니다."

그는 짐을 정리하다가 말고, 문득 벽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된 철재 캐비닛 옆에는 사진과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여져 있다. 허리에 양손을 얹고 있는 사진은 바랬고, 흉배근에는 구멍도 뚫려있다. 박치기왕 김일은 도발적인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다. 대각선 아래쪽으로 '2016년 경로의 달 기념' 국제 프로레슬링대회 포스터도 보인다. 킥복싱 자세를 취한 이왕표 사진 밑으로 13명의 익숙한 얼굴이 있다. 오른편 가장자리에 정면을 노려보는 자신의 얼굴도 보인다. 그는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리듯 어루만졌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쇠잔해가는 서글픈 육체와 말단 비대증처럼 성장하는 통증은 골든 크로스를 지난 지 오래다. 수시로 도착하는 고지서처럼 그에게 잊지 말라는 독촉장을 남긴다. 상처를 달고 살아가지만 병원에 간 기억은 거의 없다. 경기를 마치면 약값만 더 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다. 링 주변에 침을 뱉고 몇 번이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것에서 도저히 같은 온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기어코 다시 링 위로 올랐다. 불가능한 싸움을 계속하면서 그의 일부는 꺾였고, 닳았고, 상처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이곳을 데울 것이다. 장수말벌을 둘러싸는 꿀벌처럼 그는 다시 불가능을 향할 것이다. 그것과 싸우지 않고, 그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온 힘을 다한 날갯짓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호흡과 온도까지 나아갈 것이다. 부서지고 파괴되더라도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그의 의지로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이다. 단 한 번, 벌침을 쏘고 난 후 꿀벌은 자신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스러진다. 그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존재를 건 싸움이다.


계속해야 한다.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할 것이다.

그는 죽은 벌통을 힘껏 쥐었다.



'사랑하는 동생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쩌면 우리의 자잘한 슬픔들을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점에서는 인류의 거대한 슬픔들까지도 말이다. 사태를 받아들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예술가들은 부서진 컵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네게 내 그림들을 보내고 싶지만 그들이 내 그림에까지 자물쇠를 채우고 있구나.'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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