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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소비 : 텀블러 100원 할인 받기

C : (건축설계) 퇴직한 건축연구자 • 유학준비생, 남, 31세

by 모초록

할머니가 주시는 커피 값

50,000


과학기술관 1층 카페 텀블러 할인

100



“커피값 해라게”

외할머니가 종종 5만 원권 한두 장이 든 봉투를 건네주시면서 하시는 말이다.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가족과 함께 외가댁에 찾아가면, 내 나이가 서른이 다 되었는데도 용돈을 주시려고 한다. 괜찮다고 한사코 거절하여도 “커피값, 커피값”이라며 받으라는 가벼운 말로 넣어두라신다. 손주에게 전하는 완곡한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요즘의 커피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시곤 용돈을 주는 핑계로 쓰시는 것 같다. 나로서는 커피값을 아껴서 생활비에 보태버리게 되지만 말이다.


커피 소비는 나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나의 일상을 잘 설명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일할 때에도 혼자 작업할 때에도, 아니면 쉴 때에도 늘 커피를 마신다. 때문에 커피에 관한 기록은 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커피 마시기가 일기 쓰기와 다른 점이라 하면 카페인에는 중독이 된다는 것이겠다.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카페인 과다 상태로부터 해소될 때 뇌의 혈류량이 늘어서 머리가 띵한 것이라고 하는데, 기록하는 것도 자주 하지 않으면 생각이 쌓여서 머리가 띵해지려나?


직장인의 커피 생활

회사에 다닐 때에는 식사를 한 후에 다 같이 카페를 가거나, 혼자 밥을 먹었어도 맛있는 커피로 쓸쓸함을 달래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같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잠시 대화하고 휴식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마감을 끝내고 연일 야근했던 마음들을 달래기 위한 것일지 점심 후에 괜찮은 카페에 다같이 가곤 했다. 종종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것은 상급자가 동행했었기 때문이다. 키치한 내부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의 재료가 어떻느니, 돌 메지가 아쉽다느니, 이것은 가짜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건축회사로서 건물을 늘상 지을 수는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애먼 카페에게 푸는 일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물론 커피는 상급자가 쏘는 것이었지만.


혼자서도 카페에 종종 갔다. 회사 근처에는 칼라스 라는 원두를 생산하는 카페가 있는데, 이곳의 누아르블랑을 종종 마시곤 했다. 누아르블랑은 하얀 생크림이 올라간 커피로 칼라스의 대표 메뉴다. 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 혼자 밥을 먹고 생각나서 슬쩍 가보면 회사 동료분들을 마주치게 되는 곳이다. “뭐 먹었어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엔 같이 먹죠라는 말도 던져보는 그런 곳이다.


이러한 커피를 매개로 한 사회적 상호작용은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요즘의 커피값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흔한 아메리카노는 5,000원, 라떼는 5,500원, 이마저도 저렴한 수준이고 고급의 드립 커피들은 6,000원 7,000원까지 하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본 가장 비싼 드립 커피는 15,000원이었다. 회사 선임들이 사주던 커피값이 얼마인지는 당연히(감사하게도) 잊어버렸지만, 혼자 가서 자주 사 마시던 칼라스의 누아르블랑은 5,000원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탕비실의 믹스커피나 에스프레소머신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게 필요했다. 틀에 박힌 루틴 속에서 커피 원두와 사색하고 대화하는 일은 언제나 환기가 되었다.


유학 준비생의 커피 절약 작전

퇴사 이후 달라진 것이라고 하면, 이전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커피를 소비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혼자서 마시는 커피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남들과 같이 마시는 것과는 달리 혼자 소비하는 커피값은 얼마든지 절약할 여지가 있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퇴사자에게 커피가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마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일상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면 카페인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엔 틀림없다. 게다가 그런 불안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각성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No Caffeine, No Gain’ 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자취방에는 드립 커피 머신이 하나 있다. 핸드드립용으로 갈린 원두를 필터에 넣어 놓고 물통을 채워준 다음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기계인데, 인터넷에서 알아보니 꽤나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는 얼리어답터인 아버지가 호기롭게 구매하셨던 것인데, 손맛이 없어 재미가 없다며 직접 핸드드립을 하시게 되면서 놀게 된 물건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자취방으로 편입되었고, 때문에 아침마다 괜찮은 드립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타벅스에서 250g에 20,000원 정도 하는 원두를 사서 핸드드립용으로 갈아달라고 하면 2주 정도는 거의 매일 마실 수 있다. 원두를 구매하는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절약하는 기분이 들고 실제로 절약에 도움이 된다. 회사 다닐 때 자주 가던 칼라스에서도 비슷한 가격으로 원두를 팔기 때문에 그 향이 그리울 때 몇 번 찾아가서 원두를 사 오기도 했다. 매일 아침 방 안을 커피 향으로 채워줄 수 있는 드립 커피머신이 있어서 행운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카페를 혼자 가는 것은 사치다. 때문에 최대한 저렴한 커피 판매처를 찾는다. 요즘엔 메가커피나 백다방, 맘모스 커피 같은 2,000원 아래로도 큰 용량의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다. 물론 쓰디쓴 맛뿐이긴 하지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다. 스타벅스에 갈 때에는 오랜 시간 머물 필요가 있을 때만 가기로 하고, 처음 보는 이름의 좋은 분위기의 카페는 특별한 사람들이랑만 가도록 하자.


학교에서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운 좋게도 접근성 높고 저렴한 커피 공급처를 발견했다. 학생들과 대학원생들로 매번 붐비는, 과학기술관 1층의 카페의 아메리카노 값이 1,800원일 수 있는 것은 구내식당과 비슷한 개념으로 임대료가 가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경우 200원을 추가로 받지만, 텀블러를 가져가면 100원을 할인해 준다. 100원 할인이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무 번 마시면 한잔이 공짜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매우 값진 일이다. 환경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지갑 사정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한동안 저렴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 구매 횟수가 늘어났다. 1,500원, 2,000원 정도의 커피 소비가 만만하니 하루에 두세 번씩 방문하게 되었는데, 가계부를 작성할 때마다 이것이 낭비처럼 보였다. 아침엔 드립커피를 마시고, 외출할 때마다 두세 번씩 커피를 마시면 하루에 커피값만 5,000원이 넘게 나오는데, 이는 과한 지출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커피는 하루에 한 번만 사 먹기로 하고, 집에 쟁여 두었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쟈뎅 콜롬비아 수프리모 헤이즐넛 커피’는 쿠팡에서 100개당 15,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이다. 맛은 맹맹하지만 헤이즐넛 향이 강해서 저렴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커피값 아끼기는 어려워 보이는 미션이지만 루틴을 정하면 지키기 쉽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아침엔 갈아 둔 원두로 마시는 드립커피, 평일 점심엔 2,000원 이하의 커피, 저녁엔 인스턴트 커피. 스스로에겐 엄격하지만 데이트할 땐 멋들어진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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