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져도 괜찮아! 굴러만 가면 어디든 가겠지!
처음으로 필드에 나섰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곡 CC에서의 첫 라운딩,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먹고 나선 자리였다. 골프를 배우긴 했지만 1년 넘게 연습장에서만 연습만 해 왔고, 그때마다 누가 필드에 나가자고 하면 나는 못 들은 척 그 말을 피해 다녔다.
스코어는 둘째 치고, 내 실력으로는 필드라는 낯선 무대가 무서웠다. 그런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결심이 섰다. 이래저래 도망 다니던 나를 결국 감곡 CC까지 이끈 건 동반자였다.
그 친구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나와 함께하던 유일한 동반자였다. 실력도 좋았고, 샷도 훌륭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내게 골프를 잘 친다는 것은 아직은 멀기만 한 목표 같았다. 하지만 처음 라운딩이 어떤지를 같이 경험해 주겠다고, 어깨를 토닥이며 용기를 주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감곡 CC로 나섰고, 나는 그날에서야 연습장이 아닌 필드라는 곳에서의 골프를 처음 맛보게 되었다. 사실 속마음은 연습을 많이 했으니 어지간히 칠 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다. 초심자의 자만심은 골프를 경험한 모두 겪어봤을 것이다.
잔디밭의 푹신함, 광활한 풍경, 그 모든 게 나를 반겨주긴 했지만, 정작 티박스에 서니 심장이 두근거려 참을 수 없었다. 스윙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선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첫 티샷을 힘차게 날리는데,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공은 숲 속으로 뚝 떨어졌다.
나는 말없이 공이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그 순간, 옆에서 동반자가 던진 한 마디가 떠오른다. “첫 라운딩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 말이 어찌나 든든하게 들렸던지.
그렇게 시작된 첫 라운딩은 당연하게도 실수투성이였다. 공은 가는 족족 벙커에 빠지고,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체력은 방전됐다. 그런데도 나름 묘하게 즐거웠다. 실수할 때마다 한없이 웃어주고, “다들 처음엔 이래요”라며 안심시켜 주는 동반자가 있었기에, 그 하루는 골프와 나 사이의 첫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날은 스코어보다는 잔디를 밟는 기분, 푸른 하늘 아래서 맞이하는 봄날의 공기,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했던 동반자의 말 한마디가 더 깊이 남는 하루였다. 지금도 그날의 포근함과 따스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고, 그 동반자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 더는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친구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고, 골프를 배운 초창기엔 늘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와 그 친구는 서로의 길이 달라졌고, 그 관계도 끝이 났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필드에 처음 나갈 용기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그의 빈자리를 곱씹으며 그때를 회상하게 된다. 골프는 참 묘하다. 도제관계도 아닌데 가르치고 이끈다. 아마 동반자와 함께해야 하는 골프의 규칙 때문인지 모른다.
첫 라운딩은 감곡 CC에서의 서툴고 어설픈 시작이었지만, 그날의 경험과 동반자와의 추억 덕분에 골프라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새로운 동반자를 위해 그처럼 헌신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첫 라운딩의 어색함과 두려움이 시간이 지나면 추억과 배움으로 남는다. 새로운 도전은 우리에게 언제나 소중한 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