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레오의 마음으로
스테레오.
왼쪽과 오른쪽, 두 개의 스피커.
겉보기엔 단순한 구조지만
그 안엔 음악의 균형이 숨어 있다.
한쪽만 울리면 어딘가 허전하다.
음이 기울고,
가사는 뭉개지고,
노래는 원래의 감정을 잃는다.
양쪽이 고르게 울릴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듣게 된다.
기타 소리, 숨소리, 감정의 떨림까지
양쪽에서 동시에 울릴 때
그 음악은 온전히 귀에, 마음에 닿는다.
나는 가끔 스테레오 스피커를 보며
사람 관계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 사이에도
볼륨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것이 언제나 적당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너무 크게 울면
다른 사람의 소리는 묻힌다.
한 사람이 너무 조용하면
전체가 반쪽짜리로 남는다.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 왜 못 알아들어?’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왜 그걸 몰라줄까?’
그건 아마도
서로의 볼륨이 어긋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내가 얼마나 울리고 있는지’만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어떤 음량으로 들리고 있는지
잊곤 한다.
음악처럼,
사람의 말도
사람의 감정도
같은 방향을 향해 조율되어야 한다.
네가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면.
내 말투 속에 숨은 떨림까지,
내 침묵 속에 감춰진 마음까지
기울여 듣는 그런 사람.
그리고 나도,
너의 감정이 너무 커서 불안해지지 않도록
너의 불안이 너무 작아서 무시되지 않도록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관계의 대부분은
‘소리 조절’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피로,
그날의 예민함,
그날의 말투—
볼륨 노브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움직인다.
완벽한 하모니는 어려울지 몰라도
같은 곡을 듣고 있다는 감각만으로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점점,
사랑이란 건
크게 울리는 게 아니라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울리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때로는 상대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잡음이 섞일 수도 있고,
한쪽 스피커가 잠시 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아직 같은 음악 안에 있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너의 소리가 너무 작게 들리지 않도록,
나의 마음이 한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서로의 귓가에 균형 있게 울릴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 지금 같은 곡 듣고 있는 거 맞지?”
“내가 너무 크게 울리진 않았지?”
“너는 내 목소리, 잘 들려?”
마음은 스피커보다 섬세한 도구다.
그러니 천천히,
볼륨을 맞춰가자.
같은 노래를
같이 듣는 사람으로,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