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9월 7일
나는 지금 부모님이랑 같이 산다.
지난 3년간 독립생활을 마치고, 호주에서 돌아오면서
부모님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고 있다.
저녁을 먹는데 테니스 경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부모님이 유일하게 같이 즐기는 스포츠는 테니스다.
지금은 세계 4대 테니스 메이저리그 중 하나인 US 오픈경기 기간이다.
곧 있으면 남자 단식 결승전이 있는데, 엄마 아빠가 제일 기다리는 경기다.
'여보, 알카라스랑 시너 경기 그거 언제한대?'
엄마의 물음에 아빠가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부터 경기가 시작한다고 알려줬다.
'그거보려면 새벽 세시에 일어나야겠네'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작년 이맘때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했던게 떠올랐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난 호주에서 첫번째 잡을 구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5시까지 일터로 가야 했다.나는 차가 없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택시 잡는 시간까지 감안해야 했으므로, 좀 더 일찍 일어나야했다.
한국에 있었을 땐 9시 출근도 힘들어했는데,
호주에 있으니, 거의 한밤중이나 다름없는 새벽 3시 반에도 일어났었다.
그 당시 내가 살았던 곳은 주택가였는데, 나름 역세권이었음에도 전봇대 하나 없었다.
새벽 4시는 말이 새벽이지, 거의 한밤중이었다.
집 앞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불빛 하나 없어 좀 무섭긴 했다.
그래도 하나 위로가 되었던 건, 호주의 밤하늘이었다.
호주에서는 언제든 고개만 들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까만 하늘에 수많은 별빛이 반짝반짝 보이는게 너무 좋았다.
주변에 불 빛 하나 없으니, 더 잘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문득, 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 혼자 가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돈벌러 나가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호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난 평생 아침 9시 출근도 힘들어하는
잠 많은 사람으로만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겠지.
역시 사람은 위험한(?) 곳에 놓이게 되면
그때서야 숨은 능력이 나오나보다.
호주 회상은 여기까지.
오늘은 아침에 교회를 갔다가,
달맞이길 카페로 책 읽으러 갔다.
달맞이길은 뚜벅이 가긴 힘든 동네라 잘 안가는데,
오늘은 좀 색다른 곳에 가고 싶어서 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갔다.
(평소엔 귀찮아서 버스 1개로 갈 수 있는 곳들만 간다ㅋ...)
도착한 카페는 3층짜리 큰 카페였는데,
내가 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내가 첫 손님이었다.
럭키비키한 마음으로 맘에 드는 자리에 골라 앉아선
가져갔던 책을 꺼내 읽었다.
아무도 없고,
노래도 잔잔하니 책이 술술 읽혔다.
가져간 책은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의 축제' 라는 책인데,
예전에 한번 읽었던 느낌(?)만 있던 터라 다시 읽었다.
원래 책 읽을 때 연필로 줄 긋는 습관이 있는데,
연필을 안 가져가서 그게 좀 아쉬웠다.
이상하게 펜으로는 책에 줄 긋기가 망설여지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암튼, 책 읽고 걸어내려오는데,
발 닫는대로 가다보니, 미포 기찻길이 나왔다.
부산 사람 치곤 창피하지만, 미포 기찻길을 처음으로 가봤다.
역시 부산사람이 부산을 젤 모르는 듯 하다.
생각보다 예쁘게 잘 되어 있었고, 역시나 관광객으로 붐볐다.
나도 껴서 슬쩍 타볼까 하다가 편도 8000원이라길래 그냥 패스했다.
이제 오늘의 일기는 마무리 하고,
오늘의 칭찬일기를 적어보자.
오늘 내가 잘한 일.
1.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늘 노트북을 어깨에 이고지고 다닌다 평소엔) 책 한권만 가볍게 둘러매고 아침에 나선 일. 그래서 달맞이길로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아침에 노트북 집에 놔두고 간 나 자신 잘했다!!
2. 달맞이 카페에서 나올 때 네이버지도로 목적지를 찍고 나오지 않은 것. 잘했다. 왜냐하면,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보자 생각해서 오늘 미포 기찻길도 보고, 걸어내려가는 풍경도 다 느낄 수 있었다. 돌아가더라도, 그 시간을 천천히 곱씹으려고 한 나자신 잘했다 !!!
3. 저녁시간에 오랜만에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거 잘했다. 역시 명화는 보고 또 봐도 너무 좋다. 쓸데없이 유튜브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면서 시간 날리지 않은 나 자신 잘했다 !!
오늘도 스스로 수고 많았고,
자 그럼 이제 꿀잠을 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