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 월셋집으로 온 지 2주 됐습니다. 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얼룩덜룩 묻어 있습니다. 형광등 근처도 누렇게 그을렸고, 파리는 8자를 그리며 연신 형광등 주변을 배회합니다.
10분쯤 가만히 있었습니다. 베개 옆에는 약 봉투가 있습니다. 하루 한번 흰색 알약을 먹습니다. 소화를 돕는 반쪽짜리 소화제도 함께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불안 증세가 심해지면 약을 2 봉투 복용하세요. 다만, 그 이상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니까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천장이 뿌옇습니다. 실제로 뿌연 건지 아니면 기분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세상이 뿌여도 출근은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아니, 이미 선택했습니다.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아무도 제게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현관을 나서려는 데 파리가 천장에 앉았습니다. 제가 문을 닫으면 파리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어뒀습니다.
‘그래 너라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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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8시입니다. 버스는 5분 후에 도착합니다.
회사는 어제와 같을 겁니다. 내일도 비슷할 겁니다. 늘 그랬습니다. 이 생활도 결국은 끝날 겁니다. 저도 회사도 언젠가는 말입니다. 의미 없는 생각입니다.
앞이 뿌옇습니다. 버스가 옵니다. 버스 탈 때는 버스 앞에서 기다려야 했죠. 버스가 저를 못 볼 수 있으니. 아, 옆에서 기다리는 거였나요? 회사 가는 버스가 261번이었는지 463번이었는지 헷갈립니다.
[빵~~~~~~~~~~~~]
“미쳤어요!”
순간 뒤로 넘어졌습니다. 누가 목을 강하게 쳤습니다. 뒤를 보니 어떤 여자가 카라를 뒤에서 당겼습니다. 여자는 눈이 커졌고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사람 눈이 이렇게도 커질 수 있군요. 근데 누굴까요?
요란한 버스 경적음에 뿌옇던 시야가 돌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저를 구해준 모양입니다. 죽을 뻔했었군요.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닐 겁니다.
앉은 채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제게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괜찮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방금까지 목이 아팠는데 이제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쉴 이유가 생겼습니다. 여자가 말합니다.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괜찮냐고요. 죽을 뻔했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그, 죄송합니다.”
그녀가 건넨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버스를 놓쳐 15분쯤 늦을 겁니다. 지각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그냥 쉴 겁니다.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여자는 순간 멈칫했고, 저를 위아래로 훑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귀찮게 했네요. 죄송합니다. 고마워서 뭐라도 대접할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출근 시간이네요.”
“네. 고맙지만 저도 괜찮습니다.”
여자는 단호했습니다. 지금 보니 나이가 있어 보입니다. 어려 보이지만 30대 중반은 됐을 겁니다.
463번 버스가 다시 왔습니다. 지금 타면 회사에는 갈 수 있습니다. 부장에게 전화해 버스에 치일 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 치였으면 나오라고 합니다. 넘어져서 병원에 가겠다고 둘러댔습니다. 오전 반차까지는 눈 감아 줄 겁니다. 오전은 자유입니다.
그녀는 261번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조금 낡은 로퍼와 무릎이 반질반질한 슬랙스를 보니 회사 생활을 오래 한 듯합니다. 옷을 대충 입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내일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얼굴을 알았으니 보면 인사라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