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서방의 황당한 말, 말, 말
나는 남편을 응서방, 응남이라고 부른다. 워낙 영혼 없이 '응'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오늘은 발칙한 우리 남편, 응남의 황당한 말들을 풀어보고 싶다.
(사전을 찾아 정확한 뜻을 살피니 발칙이 너무 심한 표현인 듯하다. 하지만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른다.
국어 공부 더 열심히 하자. ANYWAY 남편은 내 맘대로 발칙한 걸로 정의)
1. "당신이야말로 정말 복 많은 여자야."
결혼하고 힘든 일이 많았다. 시어머니는 보기 드문 특이한 분이셨다. 남편은 주말부부를 하는데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남자였다.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혼자서 아이를 키웠다. 돈 벌어보겠다고 휴직도 안 하고 6개월, 100일 된 아기들을 떼놓고 복직을 했다.(내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교사 월급 얼마 되지도 않는구먼.)
아무튼 너무 삶이 고달파서 남편에게 투덜거리도 많이 했다.
그리고 정말 자주 하는 말.
"당신은 어떻게 나 같은 여자를 만났어? 복도 정말 많아."
그러면 남편은 응수한다.
"복 많은 남자인 나를 만나 결혼했으니 당신이야말로 정말 정말 복이 많은 여자인 거지."
맞나? 잘못하면 인정할 뻔했네.
2. "그것 참 이상하네. 우리 집엔 아무도 까만 사람이 없는데"
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사람들은 장동건 사진을 붙여놓고 보라는 농담들을 하곤 했다. 난 장동건 사진을 붙이진 않았지만 속으로 계속 빌었다. 제발 뽀얗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낳고 보니, 앗싸! 날 닮아 뽀얗다. 성공했다.
그래서 둘째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둘째를 가졌을 땐 아무런 소망도 없었다. 까맣게 태어날 거라고 절대 생각 안 했으니까.
어랏! 웬걸. 낳고 보니 신생아실 열댓 명 아기들 중 독보적이다. 새까맣다.
앗. 나를 원망했다. 큰애 때처럼 기원할걸. 아이가 자라도 까무잡잡한 건 여전하다.
응남이 어느 날 말한다.
"이상하다. 나도 그렇고 우리 집엔 이렇게 까만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와 사람이 어쩜 저렇게 자기 자신을 모를 수 있는 건지. 자기 아들보다 쪼매 덜 까매서 자기는 까맣지 않은 건가 보다.
3. "우리 회사는 초근수당 없어."
이건 정말 괘씸한 거라서 발칙하단 표현을 써도 될 거 같다.
우리 집은 돈 관리를 내가 한다. 이젠 그만하고 싶다. 힘들다.
남편은 주말 부부를 하기도 하고 회사 자체도 바쁘기도 해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 11시 12시까지 일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을 둔 친구가 이야기한다. 초과 수당이 어쩌고 저쩌고.
남편한테 물었다.
"여보 그렇게 일 많이 하는데 초과수당 안 받아?"
"응. 우리 회사는 초근 수당 그런 거 없어."
10년을 믿고 살았다. 나 진짜 바보다.
어느 날 방에 떨어진 은행예금전표를 발견했다. 자그마치 5000만 원.
그동안 남편은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10년 동안 비상금을 만들어 온 거다. 바가지 엄청 긁혔다.
남편은 항변한다.
"아니, 내가 돈을 도박에 쓴 것도 아니고 여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열심히 모아서 5000만 원이나 줬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원래는 1억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라고."
맞다. 5000만 원이나 아껴 모았으니.
하지만 괘씸하다.
친구 앞에서 우리 남편 회사는 초과수당 안 준대 말할 때 내 친구는 얼마나 속으로 비웃었을까. 발칙한 남편 같으니라고.
4. "나하고 살면 내 자상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당신한테 배이겠네?"
브런치 작가 양그래님의 글을 읽고
"커피점에서 일하면 커피 향도 고기향처럼 몸에 배인대. 신기해"라고 말했다.
"그게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본인은 싫으시니까 쓰신 거겠지."
"그래? 그럼 나하고 살면 내 자상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당신한테 배이겠네?"
아. 정말 못 말린다. 이 남자. 저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결혼 잘한 것 같기도 잘못한 것 같기도 헷갈린다.
5. "아니라고. 출장 온 거라고."
남편이 아침부터 출장을 간다고 일찍 나섰다. 남편은 나랑 살림을 합치고도 여전히 퇴근이 늦었다. 10시에 오면 다행. 독박육아. 평생 독박육아.
아무튼 어느 날 출장을 간다고 했다. 당연히 그러려니 하지.
그러다가 가계부 정리를 위해서 카드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결제 상황 실시간으로 뜬다. 어랏. 무슨 컨트리클럽. 00만 원.
당장 전화를 걸었다.
"당신 골프장이지?"
"아니다. 출장 중이야."
"아니잖아. 지금 골프장 결제 건이 카드사에 떴는데 골프장이잖아."
"아니라고, 출장 온 거라고. 그건 나도 모른다. 끊어야 된다."
끊고 다시 전화를 해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 당연히 남편은 그날 출장을 간 게 아니라 골프장을 간 거였다. 발칙한 남편 같으니라고.
6. "나 어깨 넓은 여자 좋아해."
"당신은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좋은데 이유가 있나? 그냥 다 좋지."
"그래도 뭔가 좋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선생이라서. 돈 벌지. 애 키울 여유 다른 직장보다 좀 있지. 키 크지. 인물도 뭐 그리 나쁘진 않지. 그런 것들 때문 아니야?"
"나 어깨 넓은 여자 좋아해."
앗 어깨 넓은 여자가 좋다니. 난 예전에 너무 말라서 내 넓은 어깨가 너무 싫었다. 어깨만 넓고 허리는 잘록하니 옷 사이즈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어깨 넓은 여자가 좋다니.
나랑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남편은 제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건성으로 '응'만 할까요.
사랑한다면서 제가 원하는 사소한 일을 즉시 들어주지 않는 걸까요?
제가 욕심을 부리는 걸까요?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런 건가요?
이번 주말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다시 한번 정독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