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디 짧은 글 1편 쓰기 1시간.(아침에 발행한짧은 글이 1시간이 걸리다니. 글쓰기 능력의 부족함과 갈 길 멀다는 사실 인정. 인정하니 마음 편함. 어찌 됐든 나름 내 마음 깊은 곳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애쓴 글임. 안 믿으셔도 어쩔 수 없지만)
이 사람 저 사람 글 기웃거리기 1시간을 하고 나니 학교는 세콤을 걸 시간이 다가왔다. 시작이 반이라니 학생부에 한 발 내딛기는 했으나 수많은 작문 작업을 언제 끝낼지 걱정이 앞선다. 13일이 코앞인데.
집으로 오니 반기는 건 아들의 밥 줘 배고파라는 단문. 강아지를 키워도 너보다 대화는 더 되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이 엄마의 망상인 것인가?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하는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받아야 되나?)
싱크대 개수대에 산이 되어 쌓인 설거지 그릇,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개지 않은 빨랫감들.
한숨 한 번 푹 쉬고 내 할 일이라는 거 인정. 오늘은 인정하는 하루구나.
2. 토요일 퇴근 후 시작된 일상
"아들아 미안하지만 라면 먹자."
혹시 거절할까 봐 불안과 두려움에 살짝 떠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아들은 예스도 노도 아니다. 라면 줘도 된다는 뜻이다. 급히 라면을 끓여주니 또 둘째 등장. 라면을 한 번 더 끓인다. 덩달아 배고픈 나도 비빔면을 하나 끓인다. 배도 불렀으니 설거지를 해야지.
쌓인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알파벳 C와 B가 허공에 여기저기 울려 퍼진다. 높낮이도 다르고 리드미컬하다. 뭐가 그리도 괴롭니, 아들아? 게임 속 누가 널 괴롭히는 거니? 이젠 너의 그 리드미컬한 C와 B도 이렇게 헛웃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너희 엄마도 속이 타다 타다 없어져버린 게 확실하다. 없어진 속에 지방만 붙고 있는 것 같단다. 너의 말과 행위를 언제쯤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것인지 엄마는 걱정이다. 오늘도 너를 안아줘야 되는데, 어떻게 접근하고 말할 것인지도 걱정이구나. 걱정과 동시에 살짝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리드미컬한 C를 피해 설거지를 중단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3. 나를 들여다보게 해 주는 평가
평가에 결코 눈 찍 감고 둔감할 수 없는 인간. 거기다 막 따끈따끈하게 우리 반 학생들의 평가를 일정 부분 하고 왔으니 나도 내 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미진한 글 조회수. 하지만 나는 만족하고 감사한다. 거짓말 0.1프로 섞인 99.9프로 진심. 첫술에 배부를 리도 없고 늘 부르짖듯 곳간에 쌓인 게 없다. 책을 읽는다고 읽어왔지만 브런치 타 작가들에 비해서는 턱도 안 하게 부족한 독서량. 사실 내 주변에 나보다 안 읽는 사람들 천지건만 브런치 작가들의 독서량은 따라갈 수 없으니. 내가 속한 집단이 달라지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음 편하리라.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속에서 독서량 상위권일지 몰라도 여기 강남 8 학군 브런치 공간에서는 독서량 하위 수준. 또 한 번 인정.
4. 뭘 글로 쓸까? 통계치가 보여주는 글감
벌써 85개의 글을 썼다.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고심하고 고심해서 1주일에 한 편씩 쓰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사실 부끄럽다.
깊은 사유와 비평, 멋들어짐, 연배가 지긋하신 분들의 삶의 철학, 멋들어진 사진, 전문적 지식, 재기 발랄하고 위트 있는 문체가 한가득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나름의 이유를 브런치에서 야무지게도 써 내려갔었다. 이전 글에서 보통의 삶, 보통의 생각을 보통의 문체로 용감하게 써나가겠다고 야심 차게 맹세했었다.(브런치 스토리의 작가들 (brunch.co.kr)) 그래서인지 비루한 글이나마 85개가 되었다. 정말 용감하게 또 쓰고 또 썼구나. 누가 뭐라 하든 쓰고 싶을 때마다.
이래서 익명성이 무서운 것이다. 글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자의로 노출하긴 했지만 브런치는 어디까지나 온라인 플랫폼이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라 편하기 때문이다. 인스타나 페북이 불편했던 이유는 결코 내 일상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이상하게 글로 쓰는 내 사생활은 사생활이 아니라고 느끼는 건지 마구마구 써내려 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아지경 두드려 댄다. 그동안 쌓인 한풀이라도 하듯이 자판을 신나게 두들겨 댄다.
서두가 길어졌다. 글 랭킹을 들여다본다. 어랏 85개 글 중에서 어제 발행한 따끈한 '글로벌 벌금천재 차 00'이 7위로 치고 올라와 있다. 남편한테 자랑을 한다. 1위 찍으면 외식하자는 남편. (남편아. 그런 이유로 외식하려면, 살 빼고 10주년 사진 찍자던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온단다. 참고로 살 빼고 찍자던 10주년 가족사진을 17년이 지난 지금도 못 찍고 있다. 왜냐고? 다 아시지 않는가? 살이 계속 찌기만 했으니까.)
6위는 밥 짓는 남편이다. 주말마다 밥 해주는 남편에게 내 사랑의 말을 담아 쓴 글이다. 부동의 1위 남편의 연인이다. 늘 소파에서 잠드는 남편이 미워서 쓴 글인데 요즘 애들 말로 어찌하다가 어그로를 끄는 글이 되어버렸다. 조회수가 어마하진 않지만 어쨌든 내 글에선 1위다. 상위권에 남편 이야기가 즐비하다.
어쩌다 당신은 내 글의 황당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인가? 남편아. 미안하다.
벌금천재를 읽어보라고 보내면서 미안하다고 하니 남편은 말한다. 괜찮다고. 영 멋쩍어하는 것 같아서 글을 내릴까 고민을 하니 괜찮다고 한다. 있는 사실인데 뭐 어때라고. 착한 남편이다.
어찌하다 당신은 나의 글 소재가 되었는지. 본인 한 몸 불살라 글 소재가 되어주는 남편에게 미안함과 원망과 사랑과 모든 세상의 감정이 다 묻어 나온다.
자 앞으로 벌금천재가 내 글 속 1위를 찍게 될 수도 있겠다. 1위를 찍는다 치더라도 기뻐할 일인 것인지? 참으로 값비싼 1위다. 벌금 1818불. 자 궁금하실 분을 위해서 정확히 계산해 드리겠다. 계산기 꺼내는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두드려 본 결과, 오늘 호주 환율 1불 871.64원. 대충 900원으로 잡고 계산해 보니 1,636,200원이다. 벌금 천재가 1위를 찍는다 치더라도 누구 말마따나 수익 한 푼 없는 브런치 글쓰기인데 너무나 아까운 돈이다. 호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남의 나라 주머니도 배불려 주는 착하디 착한 우리 남편.
아무튼 그리하여 결론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천재 남편의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남편은 두루두루 나에게 글감을 제공해 주는 다이내믹한 사람이었으니, 그동안 속 끓일 일도 속 터질 일도 목청 높일 일도 결혼을 후회할 일도 많았건만. 이렇게 좋은 글감으로 나에게 보답을 해주고 있으니 앞으로 잔소리 그만하고 좀 더 사랑해 주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
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90년대 말부터 학교생활기록부의 기재 방식이 수행평가 서술형으로 바뀌어서 교사들은 수행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수많은 과목들의 평어를 서술형으로 기재해 주어야 된다. 거기다 부정적 피드백은 절대 있으면 안 된다. 못하는 걸 못한다고 못하는 현실은 아비를 아비라고 못 부르는 현실과 똑 닮아 있다. 홍길동 같은 선생들 팔자. 또한 아이들마다 행여나 똑같은 말이 들어가 있어도 안된다. 전국에서 2번째로 학생수가 많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필자는 30명 학생의 과목별 성적을 일일이 다르게 써대기가 브런치에 글쓰기보다 더 힘이 들고 두렵다. 그 두려움에 이제야 시작했다는 같잖지도 않은 변명으로 또 내 인생을 비겁하게 대변하는 바이다.
아무튼 THANKS TO HUSBAND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 마무리는 영어로 할까 하다 다시 한글로 감사합니다. 남편님. 내 글의 소재가 되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