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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10. 경기만 보고 가면 축구 여행이 아니잖아?

by FG SYLEE

당신이 생각하는 축구 여행은 무엇인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정답은 없다. 당신이 축구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정도와 열정, 여행 조건에 따라 너무나도 달라지는 게 축구 여행이다.


그러나 내가 변함없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 하나가 있으니, 축구 여행과 축구 경기 직관을 완전히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축구는 경기가 전부가 아니다. 더욱이 축구의 성지라고 하는 영국에는 축구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관광 유적과 팬 경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즐비하다. 영국 축구의 역사와 인기를 느낄 수 있는 상점들도 너무나 많다. 나는 여러분이 축구 여행을 결정했다면 이런 경험들을 종합적으로 누려봤으면 좋겠다.




■ 축구 관광으로의 관점 전환

지금부터 축구 여행이라는 용어보다 축구 관광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보자.


여러분이 축구 관광을 즐길 수 있는 방법들에는 다음과 같은 후보들이 있다. 경기 직관, 스타디움 투어, 훈련장 방문, 축구 박물관 관람, 축구 유적지 방문 등. 특히나 축구의 성지 영국에는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이 너무나 좋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1) 스타디움 투어

올드트래포드

구단마다 대부분 경기날을 제외하고 구장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스타디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물론 경기 당일에도 진행되기도 하지만, 피치로 향하는 통로나 라커룸 등은 가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스타디움 투어의 메인은 라커룸과 피치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경기 당일 매치데이 투어는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반 투어보다는 값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방문하면 되겠다.


스타디움투어에 참여하면 기본적으로 라커룸, 피치, 프레스룸, 감독실, 샤워실, 화장실, 식당, 고급 좌석 등을 볼 수 있다. 구단마다 운영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는 구단, 오디오 투어로 진행되지만 값비싼 레전드 투어만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는 구단, 오디오 셀프 투어 기반이지만 각 구역에 위치한 직원이 간단히 설명해 주는 투어 등 구단 정책에 맞도록 각기 다른 운영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빅 6 기준으로는 토트넘, 맨유, 맨시티, 첼시가 가이드 투어, 아스날이 셀프 오디오 투어, 리버풀이 오디오 기반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스타디움 투어는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시설을 직접 방문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현장성과 다양한 사진을 통한 추억을 남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런던패스

참고로 런던 내 다양한 관광지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런던 패스도 알아보길 바란다. 런던 패스는 런던에서 다양한 관광 명소를 할인된 가격으로 방문할 수 있게 해주는 관광 카드인데, 정해진 기간 동안 여러 인기 명소를 추가 비용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첼시의 스탬퍼드 브릿지, 토트넘의 토트넘핫스퍼스타디움, 잉글랜드 대표팀의 웸블리 스타디움, 웨스트햄의 런던 스타디움까지 런던의 총 5개 경기장도 런던 패스 명소에 포함된다. 이 다섯 개 구단 중 3~4개 정도만 돌아도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가격이다. 심지어 경기장 투어 말고도 정말 많은 관광지를 무료로 갈 수 있어 당신이 축구장과 관광을 경제적으로 많이 방문하고 싶다면 알아보는 걸 추천한다. 가격은 플랫폼에 따라 상이하니 가장 저렴한 경로를 찾기를 바란다.


2) 훈련장 방문
아스날 훈련장

당신이 특정 팀이나 선수의 팬이라면 훈련장 방문도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단,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비추천한다. 선수단 훈련장은 기본적으로 팬서비스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가야 한다. 애초에 훈련장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갓길에 출퇴근하는 선수들에게 팬서비스받기를 바라는 것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시기에 따라 구단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팬서비스를 훈련장에서 하지 말라는 경고와 압박이 들어오기도 한다. 언제 선수단이 훈련을 진행하는지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보통은 경기 전날과 전전날 훈련할 확률이 가장 높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날이긴 한데, 이 역시도 추측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오랜 시간을 서서 기다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팬들이 서 있는 위치도 갓길인 만큼 아무리 선수가 사인을 해주고 싶다고 해도, 뒤에 차가 오고 있거나 도로 상황이 위험하면 가드가 팬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심지어 근처에 화장실이나 상업시설이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당신이 훈련장에 방문한다고 하면 이러한 리스크와 시간, 체력을 충분히 감안하고 결정하길 바란다. 영국 거주자가 아닌 우리가 불확실성을 내포한 채 하루를 훈련장에 통으로 쓰는 건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이러한 리스크를 감안하고서도 경기 이틀 전 아스날 훈련장에 방문해 약 6시간가량 서있었다.


숙소에서 2시간 반 가량 거리에 위치한 훈련장에 갔는데, 팬서비스를 해준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6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서 있던 경험은 한 번은 할 만했어도 또 하고 싶지는 않다. 후회는 없지만 내가 팬이 아닌 구단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서있지는 못했을 것 같다. 특히나 손흥민 선수는 팬서비스를 잘해주기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대기하는 한국 팬들이 많다고 들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당신이 사인을 받고 싶다면 잘 판단해서 방문을 선택하길 바란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의 체력과 시간, 열정이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


3) 축구 박물관
첼시 박물관

구단마다 경기장 안팎에 박물관을 만들어놓은 경우가 많다. 스타디움 투어와 묶어서 상품을 판매하기도,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해당 팀의 팬이라면, 더욱이 스타디움 투어를 하는 경우라면 한 번쯤 둘러보길 추천한다. 박물관에는 팀이 들어 올린 트로피, 역사적인 순간, 선수들이 착용했던 축구화 혹은 유니폼 등 기념비적인 전시물들이 즐비하다. 당신이 팬인 팀 박물관이라면 팀의 오랜 역사를 한 곳에서 모두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구단 박물관 말고도 국가나 시, 협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도 있다. 대표적으로 맨체스터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맨체스터 국립 축구 박물관이 있다. 축구의 역사부터 영국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클럽과 스타디움, 선수들과 감독들의 이야기까지 방문객들이 전시물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축구 팬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면 좋을 곳이다. 이밖에 영국에서 가까운 스위스 취리히에는 국제축구연맹 FIFA 세계 축구 박물관이 있다. 이렇듯 영국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축구 관광으로 방문하고자 하는 나라에 어떤 축구 박물관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당신의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4) 축구 유적
하이버리 스퀘어

건축물과 빌딩만이 축구 유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택가와 축구장의 경계가 거의 없는 영국 답게 지나가는 곳곳에서 축구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스날의 하이버리 스퀘어가 떠오른다.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지난 2006년 완공한 신축 구장인데, 이전 구장 하이버리 스타디움과 정말 가까운 위치에 경기장을 건설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위치했던 당시 부지에 가보면 하이버리 스퀘어라는 유적이 남아 있는데, 아스날의 오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명소다. 주택으로 재건축하긴 했지만, 경기장 틀과 약간의 잔디가 아직도 남아 있어 아스날 팬이라면 꼭 방문해봐야 할 관광지다.


웨스트햄의 런던스타디움은 2012 런던올림픽 주 경기장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주변 부지는 엘리자베스 올림픽파크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 광경과 산책로가 정말로 아름답다. 다양한 올림픽 유적과 기념물들이 즐비한 이곳에 가면 웨스트햄의 문화와 런던올림픽의 향수가 공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뿐일까. 사전 지식을 가지고 간 사람이라면 축구 경기장에 갔을 때 구장에 얽힌 다양한 갈등을 실제로 확인할 수도 있다. 가령 첼시의 스탬퍼드 브릿지의 경우 수년 째 경기장 증축, 이전, 재건축 등과 관련해 매우 시끌벅적했다. 지금은 재건축의 방향으로 어느 정도 노선이 틀어졌지만, 갈등이 한창 심했을 때는 돌아보면 경기장이 위치한 첼시 지역의 땅값, 묘지 등과 관련된 법적 문제, 지반 시설, 주택가, 경기장 소유권 관련 정치적 문제 등 정말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나는 스탬퍼드 브릿지에 방문했을 때 경기장 방향과 주변 시설을 함께 조망하며 당시 갈등의 실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축구 유적은 영국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보이는 것이 많고, 가볼 곳이 많아진다.


5) 선수단 호텔
아스날 호텔

다른 구단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스날의 경우 홈경기 전날 선수들이 항상 묵는 숙소가 있었다. 경기 전날 선수단이 도착해 경기 당일 아침에는 오전 산책까지 진행해 가끔씩 선수들이 팬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나는 경기 전날 저녁에 방문했었는데, 총 세 명의 선수로부터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선수단이 묵는 숙소가 어딘지 명확히 안다면 해보면 좋을 경험이다. 하지만 이 역시 훈련장과 마찬가지로 선수단이 이곳에서 묵는다는 보장이 없으며, 똑같이 대기가 필요하다. 더불어 다른 구단의 경우에는 나 역시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훈련장보다 난이도도, 체력도, 시간도 모두 부담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까이서 걸어가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게 크다. 훈련장에서 6시간 기다려 한 명에게 사인받았는데, 호텔에서 30분 기다려서 3명 받은 거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이번 장에서는 축구 관광을 위해 당신이 방문해 볼 수 있는 여러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거듭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당신의 열정과 여행 조건에 따라 적절히 가미하면 되는 부분이다. 나는 단지 경기만 보는 것이 축구 여행, 아니 축구 관광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축구 관광이 누구보다 풍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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