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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Sep 12. 2024

XX 년 8월 17일

선택받는 이유

오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한동안 공고도 없었고, 지원한 곳도 없어서 전화 올 데도 없는데 모르는 번호에 받기 전부터 괜스레 긴장됐다. 구직 중인 프리랜서들에게 휴대폰 벨소리는 심장박동 버튼 같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라도 뜨면 갑자기 심장이 조이는 듯 긴장모드가 된다. 모집 공고는 뜨지만 구인 완료에 대한 정보는 늘 누락되기에 늦게라도 전화 오지 않을까 늘 초조한 상태가 된다. 전화 온 곳은 여름이 되기 전쯤에 지원했던 회사였다. 두 달간 기간제로 계약하기로 했지만 프로젝트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취소되었던 일이었다. 그 일이 다시 진행되면서 연락이 온 것이다. 다행히 면접 때 좋은 인상을 남겼나 보다. 두 달이 지나서도 연락이 온 걸 보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좋은 점은 짧은 시간에 다양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주로 했던 일들 위주로 주어지기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기 어려워 아쉬웠다. 한 프로젝트 당 짧게는 1년, 일정이 늘어지는 경우엔 기약 없이 길어지기도 한다. 단점이라면 시간에 비해 처리할 일 양이 많고, 프로젝트를 전반적이고 깊이 있게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 급여는 일반 정규직에 비해 높지만, 내가 원한다고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노는 날을 치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는 일도, 급여도 크게 불만은 없지만 일정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인 것 같다. 일을 구하지 못해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늘 전투대세를 갖추고 있는 기분이랄까.


내 이력서는 항상 똑같지만,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원하는 이력이 없어 떨어지기도 하고, 요구하는 직무가 비슷해서 흔쾌히 붙기도 한다. 가끔은 경험은 적지만 이제까지 해 온 프로젝트를 가늠하여 가능성을 보고 뽑히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보다 보조를 잘 맞추는 사람을 원할 때도 있다. 가끔은 나이와 성별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해 왔지만, 내가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게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가끔은 실망하고, 또 가끔은 선택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왜 난 이것밖에 하지 못했나 하며 자책하듯 이력서를 썼던 지난날 내 모습이 괜스레 떠오른다. 만점 이력서도 배발백중으로 통과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까. 당연히 만점 이력서는 덜 실망하겠지만.


새로운 회사와는 처음과 다른 이야기가 오갔다. 두 달 계약이 아닌, 한 달간 일을 진행하면서 호흡을 맞춰보고, 프리랜서지만 월에 일정기간을 정기적으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정규직보다 근무 일수가 적어 급여는 충분치 않겠지만, 고정수입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을 구하느라 늘 뒷전이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 숨이 조금은 트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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