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것들
우연히 구청에서 운영하는 SNS에서 한 주민지원사업을 알게 되었다. 구내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 계획서를 신청하면 선정된 사람에 한해 6개월간 소정의 금액을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솔깃했다. 활동하는 게 귀찮겠지만 지금 나에게 남는 게 시간이고,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선 앞으로 살아갈 이곳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있어도 알아 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기회도 얻고, 돈도 받고.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는 기회였다. 그래서 내가 정한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번 도보로 한 시간가량 걸으면서 동네에서 나만의 아지트를 찾는 것이었다. 팀명은 이방인이라는 뜻의 스트레인저. 새내기 이주민을 잘 봐준 덕인지 무난하게 선정됐다.
주민지원사업의 조건은 한 달에 한번 활동지를 제출하는 일과 센터에서 준비한 워크숍을 참여하는 것이었다. 워크숍은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평일 낮시간에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좋아하는 것들의 이미지로 보드를 꾸미는 취향보드 만들기었다. 평소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이미지로 찾으려고 하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헷갈렸다. 예전에는 좋아했지만, 여러 사정 또는 핑계로 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이것도 여전히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고, 하고 싶은 것이라면 분명 내 취향이 맞지 않을까. 취향은 좋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거니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했던 것, 좋아하는 것들까지 이미지를 수집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결국 내 취향보드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골고루 담겼다.
1.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스페인어, 스노보드, 테니스)
2. 힐링이 되는 공간 (알부스갤러리, 환기미술관, 동네책방들)
3.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프로젝트모임)
4.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책, 영화, 음악, 미술, 사랑하는 작가님들)
5. 땀 흘리며 움직이는 활동 (걷기, 뛰기)
좋아하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데 좋아하긴 쉽지 않다. 알고 깨닫는 과정에서 깊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좋았던 기억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건 아닐까. 내가 이주해 온 이곳도 아직 ‘좋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기회로 새로운 것을 알고 좋아하는 곳이 늘어나면 이곳도 나의 취향 중 하나가 되겠지. 특별한 이유 없이 집 하나만 보고 이곳을 선택했지만, 동네 시장과 공원과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일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마침내 이곳이 내 취향이 되도록. 워크숍 마지막에 띄어 주었던 명언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남는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 마크 트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