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백수
오늘은 쉬는 날. 새벽부터 오던 비가 오전까지 그치지 않고 내렸다. 하늘은 온통 흐린 회색빛, 동네 골목길 마저 고요한 아침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아침 출근길마다 습관처럼 내뱉곤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런 날엔 집에서 비 내리는 소리 들으며 부침개나 해 먹으면 소원이 없겠네.’
‘소파에 누워 책 읽기 딱 좋은 날씨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지금 나는 어떤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나.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약간의 안정을 찾았다. 한 달의 절반을 일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내 일정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퇴근 이후와 주말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평일에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이렇게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 마음이 이상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시간을 쪼개며 했던 일들이 시간이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이게 맞는 일인지, 어떤 도움이 될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니 그에 맞춰 생산적인 일, 앞으로 도움이 될 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즐겁게 해 왔던 일들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주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 이거나, 지금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들. 누군가의 확인을 받아야하는 일이 아니기에 시작을 해도 흐지브지 되지 일쑤였다.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 이 마음을 무엇으로 다스려야 할까. 근데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 목적을 읽어버린 일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다시 떠올려보려 하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마다 성실히 적어둘걸 그랬다. 목적이 사라지니 간절함도 같이 사라지는 걸까. 시간을 쪼개며 무언가를 해냈던 그 즐거움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기억하고 있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본다. 비 오는 소리 들으며 부침개 한 판 하기. 불 켜지 않은 어둑한 거실에서 좋아하는 영화 보기.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 읽기.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고, 그리던 일. 이제야 그날의 소원을 풀어본다. 다시 오지 않을 이 고요한 시간을 만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