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당장 답을 찾기보다는 꾸준히 상기시키다 보면 언젠간 가 닿을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며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나이가 들면서 좋은 건 전처럼 혼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초년생 때라면 막막하기만 했을 일들이 더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답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되겠지'하는 조금은 안일하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온 것 같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터득하는 시기를 지나 내 인생을 톺아보는 시기 말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아이였다. 장래희망도 뚜렷했는데, 초등학교 땐 간호사, 중학교 땐 선생님, 고등학교 땐 건축가로 변했다. 저마다 이유는 있었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나지 않는 것 보면. 그래도 그 마음만은 확실했다. 대학에 입학해선 운이 좋게도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졸업하고 설계사무소로 취업을 하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더 이상 건축이 나의 꿈이 아닌 직업이 된 것이다. 동경은 사라졌지만, 나는 그게 더 좋았다. 허황된 꿈을 좇는 것이 아닌 현실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으로서의 설계사. 물론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어떤 직업인들 이 정도 없을까.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과연 내가 언제까지 이 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목표는 직업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역할일 수도 있고, 방향일 수도, 가치관일 수도 있다. 세상에 있는 일 일 수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일 일수도 있다. 언젠가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내가 나에게 이름 붙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지어진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 아직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의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그 직업 또는 역할, 방향, 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고민하면서. 나는 그 일에 어느 정도 가까워져 있는 걸까. 부디 그리 멀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으니 그 이름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같다.
내가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중요하다. 내가 나에게 이름 붙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도 그랬다. ...
-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