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연말이 가까워지니 올 한 해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게 된다. 올해 나는 무슨 일들을 했고, 무슨 일들이 있었나.
가장 큰 일은 내 인생의 빅이벤트이기도 한 독립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한 일.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어 생활해나가고 있었지만, 한 집에 살기 때문에 의식주의 일부는 늘 부모님께 의지해 왔다. 독립한 상태였다면 퇴사 결정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을 쉬어도 무료 취식이 가능했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직인 상태로 독립을 한 것은 어떤 면에선 굉장히 무모한 선택이었다. 들어갈 집의 전세를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스스로 살림을 꾸려야 한다고. 이제야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다음으로는 프리랜서로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프리랜서로의 첫 시작은 친구의 제안이었다. 취업을 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금전적 여유를 가지면서 쉬라고 연결해 준 일이 지금 여기까지 왔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초반에는 나를 소개하는 일조차 혼란스러웠다. 현대인에게 직업과 소속은 바로 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직업도 확신이 없고, 소속도 없는 나에게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앞으로 계속할 것인지 자문할 때면 늘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제는 알 것 같다. 회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다.
올해 한 일 중 뿌듯한 일은 주민활동사업에 신청한 일과 스페인어를 배운 일이다. 두 활동은 내가 원해서, 내 의지를 갖고 한 일들이다. 순수하게 좋아서 한 일들. 생활을 위해 하는 노동은 일로만 보면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다. 하지만 노동의 1차원적인 목표는 생계를 위한 것이기에 항상 즐겁다 말하기 어렵다. 하루에 평균 8시간을 버티며 일하는 동시에 다른 활동에 의욕을 갖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하는 일은 그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한 곳에 매몰되지 않게 하고, 고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살게 한다. 나답게 살게 한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기 어려운 것이 함정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올해에도 노력하며 하고 싶었던 것을 힘내어했던 것들이 있다니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프리랜서로서 나는 늘 선택받는 입장에 있다. 어느 때는 자격 미달이어서 떨어지고, 어느 때는 그 기준에 미달인데 선택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준은 있다. 이제껏 내가 해 온 일이 적힌 이력서이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큰 고민과 생각 없이 해왔던 일들이 이제와 이렇게 쓰인다. 다른 일을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해왔던 모든 일들이 의미가 있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 다른 길로 갔다면 다른 기회를 얻었겠지만, 옳은 길 또는 더 나은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인생만 살 수 있기에 내가 지나온 길이 다른 선택지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은 다른 길일뿐이다.
내가 행한 모든 것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매 순간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다가오는 해에도 그런 마음을 지키며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