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년 11월 28일

좋을 때만 만나는 사람

by 나리

'사람은 좋을 때, 나쁠 때 모두 만나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며 아주 공감하는 말 중 하나다. 좋을 때만 만난 사람은 나쁜 모습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안 좋을 때나 기분이 상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아야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본모습을 다 알 필요가 있을까. 좋을 때만 만나서 좋을 모습만 보이며 좋은 사람으로 알고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자격증을 위해 학원을 다닐 때였다. 수업을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었나. 회사에서는 배움보다는 눈치껏 행동해야 하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시험준비과정은 괴롭지만, 무언가에 집중하고 배우는 시간이 일에서 조금은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뚜렷한 목적 없어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3월부터 배우기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는 자격증 공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매주 화요일 8시가 더욱 기다려졌던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 덕분에 1년 가까이 계획에도 없던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이곳에 모인 우리는 어떠한 접점 없이 스페인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만났다. 책임에 의해 모인 것이 아닌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단 하나의 마음이었다. 알파벳부터 배우는 초급반이기에 대단한 목표도 없었다. 우린 자신을 위해, 그냥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함께 배우는 동안 경쟁이나 질투, 스트레스가 없다. 당연히 기분 나쁜 일도 얼굴을 찡그릴 일도 없다. 진짜 신기한 건 기분 나쁜 일도 수업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늘 욕심껏 내뱉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이에 말이다. 우리가 아는 건 서로의 스페인 이름뿐이지만, 한 공간에 둘러앉아 한 시간 반 동안 온전히 함께 즐긴다. 우리는 서로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 만나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람은 장단점을 모두 지닌다. 근데 굳이 모두 알아야 할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장점만 가진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만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좋을 때만 만나는 좋은 사람, 느슨한 관계란 건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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