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한 삼계탕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얼굴을 씻고, 선크림을 발랐다. 어제 가방을 미리 챙겨놓은 덕분에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갈증을 없애줄 음료를 챙기고, 약과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니 6시 30분. 오랜만에 친구와 올림픽공원으로 테니스를 치기로 한 날이다.
전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뭐 하냐는 말에 선뜻 테니스 치러 간다는 말이 안 나왔다. 일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한 달을 넘게 쉬고 있는 게, 너무나 잘 놀고 다니는 게 조금은 눈치 보였다. 그래도 거짓말할 이유는 없어서 사실대로 말했더니 끝나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복날이라고, 와서 삼계탕 먹으라고. 볼 일 다 보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나는 무슨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가. 엄마의 마음은 어림잡기가 어렵다.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7시 30분,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했다.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에 예약한 테니스장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8-9개월 만인 것 같다. 활동적인 운동 하나쯤 취미로 가져보고 싶어서 배웠던 테니스. 특별한 재미를 찾지 못해서 당분간 쉬어보자고 한 게 벌써 그렇게 되었다. 작년 겨울이 되기 전에 그만둔 후로 처음 잡아보는 테니스 라켓이 조금 어색했지만 어젯밤 급하게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늘 것도 없으니 특별히 줄지도 않은 내 실력.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둘 다 오랜만에 맞춰보는 거라 결연하게 시작했지만 갑작스레 내리는 비 때문에 30분 만에 중단되었다. 그렇게 오늘의 테니스 일정은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오전시간을 테니스로 체력을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12시, 점심시간이었다. 땀으로 절은 몸의 소금기를 시원하게 씻어내고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밖에는 오전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적당히 배부르고 노곤한 몸을 소파에 뉘었다. 머리는 온통 복잡한 생각뿐이지만, 아침부터 몸을 썼으니 조금 누워도 괜찮지 않냐는 자기 합리화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던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봤다. 4시 30분. 퇴근시간 교통체증에 걸리기 좋은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짐을 챙겨 엄마한테 출발한다는 전화를 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부터 뜨끈한 훈짐과 함께 인삼과 황기를 넣고 푹 삶아낸 진한 국물의 삼계탕 냄새가 진동한다. 맛있겠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다 차려진 엄마의 밥상 앞에 앉았다. 아무리 토종닭이라도 다리는 두 개뿐인데 하나가 그릇에 담여 내 앞으로 배달됐다. 너무나 황송한 삼계탕. 나는 이런 삼계탕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몇 번을 더 먹을 수 있을까. 멋쩍은 마음에 다리살을 크게 한 점 떼어 아빠 그릇에 놓아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소심한 마음이 전해졌으려나. 그래도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두 번의 복날이 남아 있으니까. 올해 여름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삼계탕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