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숙등기
어느 나라든지 여행을 하러 가는 것과 살러 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4인 가정이 이주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공산권 국가로,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이라면 살아본 경험과 여행 경험이 많아서 차분하게 진행했을 텐데
중국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었다.
아이들은 오기 전부터 중국어 학원을 한 학기 정도 다니게 했고, 아내와 나는 소싯적에 중국어를 배워 본 경험은 있으나 간단한 중국어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우리에게는 몇몇 천사들이 있었는데
1. 운남대에서 붙여 준 통역사 이 선생
2. 민박집 이 사장
3. 태권도 사범이었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 이 선생은 예전에 처음 운남대 출장을 왔을 때부터 내가 중국을 떠날 때까지 나와 내 가족들을 성심성의껏 도와줬는데, 이때에는 결혼한 지 갓 1년쯤을 넘긴 30대 중반의 새신랑이었다.
이사장은 우리가 아파트를 구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민박집의 큰 아들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30대 중반의 조선족 총각이었고, 태권도 사범은 우리가 구한 아파트 상가에서 태권도 도장과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을 운영하는 30대 후반쯤의 평신도 선교사였다.
외국인이 호텔이 아닌 곳에 투숙하면서 중국에 머물려면 도착 후 24시간 이내에 거주지의 경찰서에 가서 <주숙등기>라는 것을 해야 한다.
그냥 머무는 곳의 주인 정보와 여권을 들고 가서 서류를 접수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서류를 발급해 주는데 간단한 절차이지만 경찰과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이사장이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가 주었다. 이것을 24시간 내에 하지 않았을 경우 출국 시 엄청난 벌금이 물리고,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4인 가정이라 내가 이사장의 전동 스쿠터 뒤에 타고 나머지 세 명은 이사장이 불러 세운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왔다.
경찰서에는 우리 말고도 주숙등기를 하러 온 한국인이 있었는데 바로 태권도 사범이었다.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중국에 어제 도착한 4인 가정이고 아파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시원시원하게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또 우리가 받아 온 취업비자, 즉 Z비자는 30일 이내에 거류증 혹은 거류비자로 바꾸어야 하는데, 만일 30일 이내에 발급받지 못한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Z비자를 신청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나도 알고 있던 바였다.
사범은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게 위해서 우리 부부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후 취업 증빙 서류와 함께 중국 이민국에 제출해야 한 달 내에 처리가 가능하다고 알려주고 여러 소중한 정보, 이를테면 증명사진은 아무 곳에서나 찍으면 안 되고 반드시 중국 외무성에서 공인한 곳에서 찍고 사진과 함께 바코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는 것 등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사범은 한국에서 오는 많은 한국 학생들의 중국 체류비자 처리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이 분야에서 아주 능통했다.
주숙등기를 받고 아파트로 돌아와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범이 보여주는 아파트들을 둘러보았다.
몇몇 집들이 눈에 들어왔고, 통역 이선생이 미리 봐 둔 아파트는 이 선생이 퇴근한 오후와 밤에 둘러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내와 나는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했고 이사장이 동행해 주기로 했다.
돌아와서 나머지 빈집들을 사범과 돌아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감당도 안되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모를 일들을 이 3인의 도움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