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일 구름 조금 맑음
Villaviciosa-Pola de Siero 26.33km
06:50 출발.
2시 다 돼서 폴라 데 시에로 도착.
어제저녁 돼지고기와 상추가 맛있어서 슬금슬금 마시다가 한 병을 다 마시고 잤더니 아침까지 술이 덜 깨서 찌뿌둥하다.
그래도 커피 마시고 사둔 빵과 과일을 먹으니 좀 나아진다.
오늘은 이번 까미노에서 분수령이 되는 날이었으니 바욘에서 출발한 해안가 북쪽 길을 마감하고 내륙 산길로 들어가는 <프리미티보 길>로 진입하는 날이다.
길 이름이 프리미티보가 된 이유는 야곱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알폰소 왕이 이 길을 걸어서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순례를 했다고 해서라고 한다.
당시 스페인 국왕쯤 됐으면 말을 탔거나 수행원들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왕들도 이런저런 일로 지방 행차들을 했던데 산이 70%인 나라에서 왕이 가마를 타고 이동했으니 속도도 더디고 수행원들도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지병으로 온양에 행궁까지 마련해두고 여러 번 행차했던 세종대왕도 말 타고 휙 오고 갔더라면 당뇨도 좀 나아지고 휴식 시간도 길어져서 신하들과 왕 서로 좋았을 텐데.
정조가 제 부모 제사 지낸다고 한강 건너 수원 화성, 융건릉까지 왕래하는 당시 그림을 보면 장관이라는 생각보다 백성들을 불필요하게 많이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다 덜 힘들고 쾌적한 코스타 길로 간다.
프리미티보가 더 힘들다는데 나는 홀로 이리로 간다.
같이 가면 이제까지 친해진 사람들과 즐겁게 갈 수도 있겠지만 별 갈등 없이 나는 프리미티보로 결정했다.
원래부터 그렇게 정하고 왔고 또 이제까지 사실 아름다운 바다는 지겹도록 봐왔기 때문에 미련이 없다.
그리고 프리미티보 길이 난도는 높지만 빼어난 스페인 북부 산악 지형의 절경을 보여준다니 우리나라의 산그리메와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갈림길에서 그동안 같이 걷던 프렌치 아줌마와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처음 보는 스페인 아줌마, 몬세라트가 자기도 프리미티보 간다고 같이 걷는다.
모두 코스타로 방향을 잡아서 혼자만 프리미티보로 빠져나와 걸을 뻔했는데 그녀와 나 둘이 걸으니 서로 의지가 되고 좋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다른 스페인 이름이 있는데 내가 몬세라트 수도원을 다녀왔다고 하자 자기 이름 중에 몬세라트가 있다고 자기를 그 이름으로 기억하라고 한다.
계속 같이 걸으며 한국 얘기도 하고 즐겁게 왔다.
바르셀로나에 살고 정당에 소속되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는데 이 아줌마 영어가 더듬대서 뭔 소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오비에도까지 간다고 큰소리치더니 폴라 데 시에로에 헉헉대고 간신히 들어왔다.
오늘은 오래간만의 공립 알베르게이다.
공립답게 규모가 컸고 너른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다 좋은데 샤워실에 찬물밖에 안 나와서 으악, 으악! 소리 지르며 샤워했다.
어제 시장 봐논게 많아서 점심은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정원의 피크닉 테이블에서 체리와 함께 먹었다.
이후에 독일 부녀와 지인으로 이루어진 3인방, 자기 집 앞에서 순례를 시작해 이미 천 키로를 넘긴 아름다운 프랑스 청년 줄리앙, 프랑스 커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제일 마지막으로 스위스 아미 출신 요르그도 왔다.
이날 처음 만난 요르그와 나는 이후로 각별하게 친한 사이가 되어 순례 마지막 날까지 재밌게 지냈다.
저녁때 스페인 아줌마 몬세라트가 제대로 된 아스투리아 음식을 맛보여주겠다고 로칼 식당에 데려갔는데 매우 매우 독특한 아스투리아 사과 와인 시드라와 생선 요리 코스를 먹었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