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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음식 - 하몽 jamon

by 이프로 Jan 14. 2023

카미노를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스페인 음식을 맛보게 됩니다.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순례자 정식이나 오늘의 메뉴를 먹을 때면 여유 있게 맛을 음미하면서 먹지만 걷다가 중간에 먹는 점심 식사나 간식은 허기를 때우거나 에너지를 보충하는 기능성 음식인 경우도 있습니다. 

카페나 바르가 나오면 샌드위치, 즉 보까디요 bocadillo를 시켜 먹었는데 열에 아홉은 하몽 jamon이 들어간 보카디요를 먹게 됩니다. 보통 토마토와 야채가 같이 들어가 있는데 한 끼니로 충분하지요. 

식당이 없는 곳에서는 주로 콜라와 바게트를 갖고 다니면서 앉을만한 자리가 나오면 주저앉아서 끼니를 때우는데 이때에도 역시 함께 먹는 것은 하몽이나 초리소(스페인 소시지)입니다. 

하몽이 유명한 안달루시아 지역에선 맥주 탭도 하몽 모양입니다. ㅎ

하몽은 스페인 전통요리인데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서 통기가 잘되는 창고에 매달아서 2년 이상 숙성시킨 고기를 얇게 슬라이스 해서 먹는 음식입니다. 최근에는 이마트에서도 팔고 코스트코에 가면 최상급 하몽인 하몽 데 이베리코 베요타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은의 길 Via de la Plata을 걷다 보면 유난히 방목 중인 돼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스페인 남쪽 지방이 이베리코 돼지를 키우는 주요 산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역을 데에 사 dehesa라고 합니다. 스페인에서 난 돼지가 모두 이베리코는 아니에요. 


이베리코는 스페인에서도 귀한 돼지이고 양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베리코 돼지는 스페인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돼지가 이베리코 자격을 얻으려면 부모 돼지가 모두 이베리코이거나 엄마가 100% 이베리코+아빠 50% 이베리코인 경우에도 이베리코로 쳐 줍니다. 부모 모두 이베리코인 경우에는 이베리코 중에서도 최고급인 블랙 라벨을 붙여서 따로 표시를 해 줍니다. 

하나 사 오고 싶지만 하몽 전용 스탠드도 있어야 하고 생각보다 슬라이스 하기가 어렵다네요.

길을 걷다가 '디아'나 '카르푸', '메르카도나'같은 대형 슈퍼를 들어가 보면 한쪽에 하몽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천장에 돼지다리를 매달아 두거나 포장해서 세워두고 통으로 팔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슬라이스 해서 팔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례자들은 대개 1회용으로 진공 포장된 걸 사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하몽에는 하몽 세라노 jamon serrano라고 쓰여 있는데 그냥 백돼지를 뜻합니다. 이런 애들이 가장 싸고 또 만드는데 1년 이하로 기간이 짧기도 합니다. 하나에 1-2유로 안팎인데 맛있습니다. 

싼 애, 하지만 얘도 맛있어요.


옆에 보면 포장이 고급스럽고 복잡하게 쓰여 있는 비싼 하몽들이 있습니다. 거기부터 이베리코 하몽이라고 보면 되는데 자세히 보면 색깔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흰색,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입니다. 싼 애부터 비싼 애 순서입니다. 

흰색 애는 50% 이베리코 혈통을 가진 애로 사료를 먹여 키운 애입니다. jamon Iberico de cebo 하몽 이베리코 데 세보라고 쓰여 있어요. 세보가 사료라는 뜻입니다. 얘가 이베리코 중에는 제일 싸지만 백돼지 하몽보다 두 배쯤 비쌉니다. 


그다음 초록색 애부터는 하몽의 질이 확 달라집니다. 여기부턴 키우는데 2년 이상 소요되는 애들입니다. 

스페인 남부에 돼지 방목 농장이 많은데 이런 지역을 데에사 dehesa라고 합니다. 초록색 애들부터는 이런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어 기른 돼지입니다. 초록색 라벨을 받으려면 50% 이상의 이베리코 혈통에 데에사 지역에서 방목해서 키운 돼지로 돼지 한 마리당 방목장의 면적이 1헥타르 이상이어야 합니다. 엄청 큰 목장이어야 돼지 사육이 가능한 거지요. 이런 돼지를 하몽 이베리코 세보 데 캄포 jamon Iberico debo de campo라고 하는데 여기서 캄포가 들판을 말합니다. 즉 들판에서 방목시키고 사료 먹여 키운 애라는 뜻이지요. 

2022년 초 은의 길 걸을 때 만난 이베리코 돼지를 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후로 지겹게 나와서 그냥 사 먹기만 했습니다.

빨간색 애는 더 고급입니다. 이 애는 데에사에서 방목하는 건 물론이고 사료를 먹여서 키우지 않고 도토리를 먹여서 키웁니다. 도토리를 어디서 사 와서 먹이는 게 아니라 얘네들 노는 들판에 심어진 나무가 다 참나무예요. 그 열매인 도토리를 돌아다니며 주워 먹는 거지요. 도토리 주워서 묵을 쑤어 먹는 우리와 다르게 그걸 돼지에게 먹인 후 그 돼지를 잡아먹는 스페인 사람들입니다. 암튼 이런 돼지는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 jamon Iberico de bellota라고 하는데 베요타가 바로 도토리입니다. 


그럼 검은색 애 하나 남았는데 얘는 뭘까요? 얘는 그냥 이베리코 돼지가 아니라 100% 혈통을 가진 이베리코 돼지를 방목해서 키우고 사료대신 도토리를 먹고 자란 아이를 말합니다. 스페인에서 돼지의 혈통 관리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우리의 의심스러운 영덕 대게나 돌게 딱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코스트코에서 이 하몽을 팔고 있습니다. 가격도 100그램쯤에 2만 원 선으로 스페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입니다. 저도 지금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고 알았습니다. 몇 번 사다 먹었는데 베요타는 아니었거든요. 

담에 가면 꼭 하나 집어와야겠습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베요타 등급 하몽

스페인 가서 행동식 챙길 때 하몽 한 팩과 바게트 빵 하나는 챙기세요. 그리고 토마토랑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하몽이 염장한 거라 좀 짜거든요. 그런데 토마토랑 먹으면 궁합이 잘 맞아요. 토마토에 소금 찍어 먹으면 맛있잖아요. 


아, 빨리 스페인 가서 멜론에 하몽 올려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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