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파씨바 Mar 27. 2024

[히든트랙] 첫사랑 by 전람회

남다른 깊이의 가사로 더더욱 감동스러운

지금은 경향신문사옥인 정동의 그곳은 한참 전에는 MBC가 있었다. 요즘도 종종 쓰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MBC 라디오의 <공개방송>(당시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별밤, 이종환의 디스크쇼 등의 공개방송을 포함하여)이라는 것이 종종 그곳에서 열렸었다.  MBC에서 진행하는 여타 행사들도 그곳에서 많이 열렸던 것 같다. 


지인이 여러 차례의 예선을 거쳐 대학가요제 최종 예선엔가 3차 예선인가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악보던가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고와 챙겨다 달라는 급한 요청을 받고 정동으로 향했다.


그 공개홀에는 대학생 뮤지션들이 그야말로 한가득이었다. 


대학생들이었지만, 

당시 대학가요제의 위상으로 보건대, 

1차 예선을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그 시기에, 

음악 꽤나 했던 거의 준프로급의 뮤지션들이었기에, 최종예선까지 갔을 것이다. 


한 팀 한 팀, 참가자들이 실력을 뽐내고 있었고,

난 지인 팀을 응원함과 동시에, 

일반인이었던 나는 다른 참가 팀들의 뛰어난 실력에 많이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달랐다. 


각자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을 뮤지션들이기에, 

타 팀의 예선 무대가 끝날 때마다, 

아주 크지도 않은, 아주 작지도 않은 박수 소리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최소한의 박수 정도로 경쟁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만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많은 팀들이 본선을 앞둔 마지막 무대를 펼쳐 보이고 난 뒤, 

또 다른 참가팀이 무대에 올라왔다. 


그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경연장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이전 무대에서 속닥속닥 잡담을 하거나, 딴청을 하던 다른 참가자들이 무대를 보기 시작했고, 곧이어 모든 참가자들이 이전 무대들과 다르게 초집중 모드로 들어갔고,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모든 참가자들의 숨소리 정도만 들릴 정도였다. 


노래가 끝나자,

경쟁자임을 잊은 듯, 그곳에 있던 참가자들이 그들의 신선하고 짙은 무대에 하나가 되어 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경연장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했듯, 

몇 주가 지나 그들은 그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날 난 그렇게 운 좋게, 

그들이 대중 앞에 제대로 선보이기도 전에,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첫사랑 by 전람회

https://youtu.be/9ZRGPY4uge4


[Credit]

작사: 김동률

작곡: 김동률



그렇다. 


그해, 1993년 대학가요제 최종예선에서 <꿈속에서>라는 곡으로 많은 경쟁자들의 놀라움을 샀고, 본선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

바로 김동률, 서동욱, 2명으로 만들어진 <전람회>이다. 


김동률 님의 곡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곡들이 정말 많지만, 

이 곡을 고른 이유는 

"솔로" 뮤지션으로서가 아닌 "팀" 전람회로서의 곡을 골라보고 싶었고,

전람회의 1집부터 3집까지 많은 좋아하는 곡들 중, 

이 곡이 그나마 제일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개인적으로, 

작사와 작곡, 편곡, 보컬, 그리고 피아노 연주까지,

밸런싱이 가장 완벽한 뮤지션으로 꼽는 것이 바로 김동률 님이다. 


보통 어느 것들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어느 것들이 더 뛰어나거나 하는데,

김동률 님은 그야말로, 

각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듯하다.


특히나 전람회 때, 그리고 솔로 초창기 때의 가사들과

그 당시의 김동률 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가사를 썼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첫사랑 역시,

기껏해야 20대 초반 정도에 쓴 가사일텐데도... 


"더 높게 보이고 더 크게 보였지..." 

첫 도입부에서 이미 끝난 가사가 아니려나. 


첫 사랑의 마음을, 그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그 가사가 압권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곡의 후반부에서 가사 없이 허밍으로 부르는 부분에서,

그 코드 진행에,

그 피아노 하나의 반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김동률 님의 그 특유의 파르르한 바이브레이션, 

난 이 부분을 들으면 꼭 울컥 하게 된다. 


김동률, 서동욱 님의 풋풋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들이 가득한 전람회의 앨범들은

언제 들어도 참 좋다. 



[가사] 

더 높게 보이고 더 크게 보였지

내가 아닌 마음에 난 눈물을 흘리고


잡을순 없었지 가까이 있지만

숨겨진 네 진실을 난 부를 순 없었지


볼수는 없었지 마음 깊은 곳까진

언제나 한발 멀리서 그냥 웃기만 했어


추운날이 가면 알지도 모르지

겨울밤의 꿈처럼 어렴풋하겠지만


잊을순 없겠지 낯익은 노래처럼

바래진 수첩속에 넌 웃고 있겠지


잡을순 없었지 가까이 있지만

숨겨진 네 진실을 난 부를 순 없었지


볼수는 없었지 마음 깊은 곳까진

언제나 한발 멀리서 그냥 웃기만 했어


추운날이 가면 알지도 모르지

겨울밤의 꿈처럼 어렴풋하겠지만


잊을순 없겠지 낯익은 노래처럼

바래진 수첩속에 넌 웃고 있겠지 



이전 01화 [히든트랙] 난 이해할 수 없었네 by 천용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