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지만 살만합니다.
아들 셋 외벌이라고 하면 다들 집이 웬만큼 잘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집은 남편의 희생과 빚으로 근근이 이어가는 중이다. 남편과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는 편이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을 고르라면 바로 '돈'이다.
사지멀쩡한 40대 초반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일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하면 핑계처럼 보일까? 사실 나 자신도 우울증이라는 거대한 산 뒤에 격하게 일하기 싫은 게으름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약간은 헷갈리긴 한다.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이유가, 아이들을 잘 돌보며 가르치고, 집안일도 틈나는 대로 하기 위함인데, 사실 집을 매일 쓸고 닦고 깔끔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몸은 편하면서도 죄책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편은 절대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지금의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다섯 식구 가장의 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먹성과 체구에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의 이런 고민을 진료시간에 털어놓으면 선생님은 언제나 물으신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 있나요?" "학교에서 말썽 안 피우고 잘 다니면 됩니다."
그저 속 편한 대답처럼 들릴 수 있는 말씀에 얕은 안도감을 느끼며 '잘' 살고 싶은 것이 '평범'함에 대한 감사라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해 본다.
학습 부진이 있어서 전화는 받아도 학교에서 말썽은 안 부리는 아이. 매일 싸우지만 외동이었으면 심심해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 쓸어내리는 아이들. 밤마다 머리 맞대고 수련회 온 것처럼 깔깔 대다 스르르 잠드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없는 한 가지가 '돈'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신경질 내는 엄마지만 제일 예쁘고 엄마가 제일 좋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우울증이지만 살만 합니다.